저는 요즘 글쓰기도 독서도 띄엄띄엄하고 있습니다. 뻔뻔한 말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사실인걸요. 그렇다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달 동안 쉬었더니 몸이 이제는 좀 움직여야 하지 않냐는 신호를 보내길래 이번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헬스장에 갔다 왔습니다. 가면 또 신기하게도 하게 됩니다. 하고 나면 좋은 데 가는 게 어렵고 막상 가면 열심히 하는 헬린이입니다.
독서포스팅이나 일상글을 쓸 때는 반말이면서 왜 갑자기 친한 척 존댓말을 쓰고 있을까요? 그냥 오늘은 아무 이유 없이 이웃님들께 막 비벼대고 싶습니다. 부드러운 털인형에 얼굴을 파묻거나 골든 레트리버를 꼭 껴안은 것처럼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누가? 제 글을 읽으시는 이웃님들이요^^
저는 얼마 안 있으면 오십 살이 됩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지천명의 나이이죠. 불혹인 40살에 셋째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마흔이라는 숫자에 연연할 시간이 없었죠. 매일 밤 울고 보채는 막둥이를 안고 토닥이다 숨을 돌려보니 지금입니다. 10살 난 막둥이가 혼자 큰 것처럼 굴 때면 잃어버린 제 사십 대는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몸보다 눈동자가 먼저 늙는다고 합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보인다는 말일 겁니다. 오래전 사람들은 절보고 슬픈 사슴눈 같다고 했지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눈으로 욕하고 레이저도 쏩니다. 사슴도 나이가 들면 눈동자에 독기만 남을까요? 가끔 아이들이 제게 무섭다고 말하면 저는 어리둥절합니다. 곱디곱던 사슴이 사나운 암사자가 되는 세월이 무상한 요즘입니다.
이런 하소연을 하려고 글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 편하다 보니 자꾸 이야기가 옆으로 새네요. 편한 사이일수록 지킬 걸 지켜야 관계가 오래가는데, 저는 아직도 친한 사람에게 속을 드러내고,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후회하지요. 지금 친한 사람도 언젠가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연말을 보내고 계신가요? 모임이나 약속은 많이 잡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오다 보면 가게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봅니다. 저도 여전에는 술집을 참 열심히도 다녔답니다. 고된 일을 마치고 사람들과 기울이는 맥주 한 잔이 위로지요.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위로받고, 술로 하나 되었다 술 때문에 아침에 후회하며 일어나기도 했지요. 그 시절의 저는 어디로 갔을까요? 영화라면 되돌아보기라도 해서 보고플 때 찾아볼 텐데 기억으로만 남은 과거는 온통 아름답게 미화돼서 아무리 내 이야기지만 낯 뜨거울 때가 있답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하는 사람입니다. 모임도 하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마음이 불편하면 잘 나가지 않습니다. 오래된 친구들이라 이해한다고 말은 하지만, 저렇게 사회성이 없어서 어떡하나 걱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남편이 나가야 저도 나갈 건수를 잡을 건데 집 밖에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니 저도 꼼짝없이 옆에 앉아 있답니다.
혼자라도 나가면 되지 않냐고요? 부부관계도 주고받기가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하는데, 남편은 6시 모임에 8시에 집에 들어오고, 저는 7시 모임에 12시에 들어오니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모임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아이들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걸 먹다 9시가 넘으면 꾸벅꾸벅 조는 베짱이입니다.
가끔 이렇게 인간관계가 좁아도 될까. 걱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전업주부로 20년을 넘게 살다 보니 동네 앞 마트직원들의 얼굴은 다 알아도 힘들 때 전화할 사람하나 없는 요즘 문득 집에 큰일이라도 나면 누가 올까? 걱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학부모로 만나는 엄마들이나 학원선생님에게 집안의 경조사를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아줌마들이 모임에 열정적인 이유가 어쩌면 큰일대비는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 만나는 게 점점 어려워집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한 시간 스몰토크는 가능하지만(아줌마의 뻔뻔함을 무기로 얼굴에 철판을 깔아서),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좋은 일을 마음껏 자랑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서로의 속사정을 뻔히 아니 주고받는 말의 진의를 자꾸 따지게 되고, 입바닷소리만 하다 돌아서면 공허할 때도 있습니다.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좋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종일 핸드폰이 잠을 잘 때가 많습니다.
외롭지 않냐고요?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 셋이 있으니 괜찮다는 말 중 반은 거짓말입니다. 가끔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누구의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 연결된 사이가 아니라 오롯이 나 베짱이를 궁금해하고, 떠올려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항상 과분하게 받기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해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고, 제 능력보다 더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중학교 도서관봉사를 가는데요, 사서선생님이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봉투를 건네주셨습니다. 저를 생각하며 어울릴 것 같아 책을 골랐다는 말에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실컷 읽고, 신간은 제일 먼저 대출하는 특권을 누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선생님이 저와 함께 한 시간이 좋았다는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답니다. 선물은 제가 드려야 했는데, 여전히 부족한 저는 그날이 마지막날인줄도 모르고 쫄래쫄래 갔다 감동한아름 안고 돌아왔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밖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25년 다이어리를 사다 제가 생각나 똑같은 다이어리를 두 개 샀다며 살포시 내미는데 저는 또 좋아서 히죽거리기만 했습니다. 지인은 큰 딸의 초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 학부형으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세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에 저보다 훨씬 똑똑한 친구라 첫 만남부터 좋아했던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와 계속 만날 수 있었던 건 바로 골프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워킹맘과 전업주부, 사는 곳도 다르고, O형과 B형이라 성격도 다르지만, 둘 다 술을 즐기고, 책을 많이 읽으며,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며, 골프를 즐깁니다.
학교 엄마들과 아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여서 처음에는 친자매처럼 지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끈이 느슨해지고, 점점 헐렁해지다 끊어지고, 돌아서기 십상입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와 만나면 학교나 아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기 계발이나 좋은 책, 운동방법이나 다이어트, 골프얘기등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그 친구와 만나면 세 시간도 순삭입니다.
이하영 작가의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삶의 기본기는 독서, 운동, 명상이다.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이 3가지를 매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매일 1시간 독서하고, 1시간 운동, 3분 명상을 하고 있다. 이것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는 절대 만날 수없다. 10년이 지나면 너무나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저는 그 친구와 오랫동안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매일 운동하고, 책읽고, 명상합니다. 그 친구도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말이 뭐냐고 물으시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자.입니다.
아는 사람이 많은 것보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한 사람에게 더 잘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뭐 해?라고 톡을 보내고 되는 그분께 오늘은 안부인사를 해보는 건 어떠세요?
저는 일단 늙고 힘없는 인생의 반쪽에게 따뜻한 생강차를 한 잔 줘야겠습니다. 글 쓰는 내내 기침하는 게 마음에 걸리네요. 여러분들도 모두 행복하고 충만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밖에는 찬바람이 불어도 집은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부글을 남겨주시면 감동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