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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Dec 03. 2024

아침운동을 포기하고 글을 쓰다

잊어버리기 전에 쓰는 글

오늘은 10살 막둥이의 아침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다. 적어도 7시 40분에 나가야 학교에 8시 전에 도착한다. 수업에 늦는 걸 싫어하는 막둥이는 화, 목 아침이면 유난을 떨며 아침을 준비한다.


어젯밤 나는 잠들기 전에 심한 기침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병원을 바꾸고 조금 나아졌는가 했는데 밤만 되면 기침이 심하게 나는 요즘이다. 이러다 목에서 피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옆에서 잠든 아들에게 미안했다. 바로 누우면 심장이 울렁거리면서 기침이 나왔다. 알레르기 비염이 심하고, 천식이 있다는데 혹시 의사가 오진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쯤 일어나 약간 뜨거운 물을 마셨다. 밤에 4번 깨서 화장실에 갔다. 갔다 오면 기침을 하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4시쯤 일어나 보왕삼매론과 마음 다스리는 글, 일상발원문과 행복한 가정을 위한 발원문을 읽고, 글을 쓰거나 읽은 책을 정리하면서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데 큰 딸이 먼저 일어나 안 방으로 왔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새벽녘에 겨우 찾아온 잠은 달았다. 마음 같아선 계속 자고 싶었지만, 마음을 누르고 끙하며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아이들이 챙기는 사이 아침밥을 준비했다.



식탁에서 세 남매가 종알거리며 밥을 먹는다.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빨래를 갠다. 오늘은 아들 발표회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운동을 한 후에 챙겨서 11시까지 학교에 갈 예정이었다.


아들이 소리를 질렀다. 가 보니 반팔체육복안에 입은 하얀 긴팔티셔츠의 소매에 김치국물이 묻어 있었다. 얼른 하얀 티를 벗으라고 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아들은 밥을 먹다 말고, 몸을 비틀며 티를 벗기 시작했다. 밖에 있는 반팔티를 먼저 벗고, 하얀 티를 벗으면 되는데 굳이 밖에 옷을 벗지 않고, 안에 있는 긴팔을 벗는 마술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엄마가 바쁘거나 말거나 아들은 십 분이 넘도록 낑낑대며 몸을 비트는데 그게 보기 싫어서 백.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학교 안 갈 거야?


방에 있던 남편이 나와서 본 건 반팔만 입은 아들과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나였다. 당연히 남편의 눈에 나만 빌런으로 보였을 것이다.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그것만 입으면 추워. 안에 긴팔 입어.


아들은 실내체육관에서 할 거라 춥지 않는다고 했고, 남편은 오늘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아무리 실내라도 춥다고 했다. 나는 둘 다 꼴 보기 싫어져서 방에 들어가 버렸다.


뒤따라온 남편이 아들을 저렇게 보낼 거냐며 힐난하듯 말했다. 갑자기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졸지에 무능력하고 나쁜 엄마로 만들어버리는 남편의 말투가 듣기 싫었다. 거칠게 서랍을 열어 긴팔을 꺼냈는데, 아들은 이건 목이 올라와서 싫다 하고 저건 너무 검정이라 싫다고 했다.


부들거리면서 똑같은 하얀 긴팔을 꺼냈다. 아들은 입술을 잔뜩 내민 상태로 옷을 입었다. 남편은 네가 그렇게 화를 내면서 말하면 나라도 입기 싫었을 거라며 여전히 비아냥거렸다.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 마음을 삭혔다. 아침에는 되도록 화를 내지 말자고 하며 살고 있는데 그게 참 어렵다. 남편에게 혼자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했더니 남편이 네가 안 가면 나도 안 간다고 맞받아친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꼭 나와 같이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보내면 안 된다.


차에 올라타서 최대한 괜찮은 척했다. 아들이 손을 내밀자 꼭 쥐어줬다. 우리 집 분위기 메이커인 막둥이의 재롱으로 아들이 웃었다. 벌렁대던 가슴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진정됐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서 아이들을 보내고 나자 힘이 빠진 나는 운동할 엄두도 못 내고 이렇게 글을 쓴다.


미드 <영셸든>


좋아하는 미국드라마 중에 <영셀든>이 있다. <빅뱅이론>을 먼저 본 나는 셀든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래서 셸든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셸든>도 당연히 좋다. 극 중에서 셸든은 천재물리학자다. 9살 때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11살 때 텍사스대학에 들어갔다. 셸든이 노벨물리학상을 받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난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단지 천재과학자들의 이야기라면, 과학을 제일 싫어하는 내가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셸든은 학문적인 면에서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이지만,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는 빵점짜리 인간이다. 이기적이고, 편집증적인 강박관념이 있으며, 하나에 몰두하면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리는 통에 엉뚱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런 셸든이 사회에 조금씩 적응하고, 친구를 만들고, 결혼까지 가능했던 건 바로 따뜻한 가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셸든의 어머니 메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메리의 남편은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이다. 거대한 몸집의 남편 조지는 심장이 나빠서 몇 번 응급실에 실려가 메리를 놀라게 했다.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고, 퇴근 후면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거나 집에서 소파에 앉아 맥주 마시며 티브이만 본다. 큰 아들 조지 주니어는 학교공부에 담을 쌓았다. 여자를 쫓아다니고, 돈을 벌겠다며 밖으로 쏘다니는데, 돼지우리 같은 방은 한 번도 청소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셸든은 학교에서든 밖에서든 고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낸다. 그런 셸든의 쌍둥이동생 미시는 늘 셸든의 그늘에 가려 사는 것이 불만인 듯 학교에서 삐뚤어지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메리는 항상 머리가 아프다. 찡그린 얼굴, 놀라는 표정만 짓다 보니 메리는 웃는 게 어색하게 됐다. 어느 날 미용실 거울 앞에 앉은 메리는 당황한다. 어떤 스타일을 해도 예전의 아름답고 활기찼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심지어 지금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메리의 황당한 얼굴에 나를 대입시켰다.


좋은 소설이 그렇듯 좋은 드라마 역시 시대와 장소, 국가와 연령을 추월해서 주는 감동이 있다. 거기에 공감대까지 형성되면 빠져들게 된다. 나는 <영셸든>을 몰아보지 않는다. 하루에 딱 한 편씩만 본다. 남편과 아이들과 친정엄마 때문에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하는 메리를 본다. <빅뱅이론>을 보며, 셸든에게 빠져들었다면 <영셸든>에서는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딸인 메리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행동에 위로를 받는다.


글을 쓰기 전에 <영셸든>을 봤다. 보면서 생각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엄마라면 누구나 소리를 지르고, 아내라면 누구나 남편을 미워한다. 그러다 후회하고, 화해하고, 사과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위로가 된다. 요동치던 가슴이 진정됐다. 이제 부엌을 정리해야겠다. 아이들이 어지러 놓은 집을 치우고, 적당히 꾸안꾸 패션을 장착해서 학교로 가야겠다. 아침에 눈물 쏙 빼놓고 간 우리 아들이 발표회에서 실수하지 않기를 빌며, 극성엄마로 변신해서 열심히 박수를 치다 와야지.


오늘도 무사히. 무탈하게 잘 지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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