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셀프

by 레마누

오늘 문학**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내가 신인상에 응모한 소설이 검증을 거쳐 신인상을 받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작년 이맘때도 나는 똑같은 전화를 받았었다. 그때는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시상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동안 단편소설을 정리해서 보내고 연락을 기다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쓴 것이 과연 소설일까? 소설로 읽힐까? 확신이 없었던 나는 공모전을 통해 인정받기를 원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쓰기만 하면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등단할 줄 알았다. 신춘문예 4곳에 원고를 보내며 네 군데에서 연락이 오면 어떡하지? 하는 김칫국을 마시며 낄낄댔다. 연락이 없자 핸드폰번호를 잘못 적은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한 달이 지나 발표가 끝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잠깐 또 다른 공모전에 응모했고, 연락을 기다렸고, 실망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인지 잘 알고 있다.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집요한 정유정작가도 수없이 많은 공모전에 응모했고, 떨어졌다. 성공한 소설가들은 자신들의 기나긴 무명시절을 무용담처럼 말한다. 나도 그들처럼 되려면 적어도 3년은 마늘과 양파를 먹으며 견뎌야 한다. 참고 견디는 걸 제일 못하는 나는 뛰쳐나왔고, 독립출판을 알아봤으며 자가출판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문예지 등단이 떠올랐다. 작년에는 등단장사라는 말을 듣는 문예지에 자기들만의 잔치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일단 내 아이들을 어디든 보내고 싶었다. 서랍 안에만 있어 곰팡이가 필 것만 같은 아이들에게 햇빛과 바람이 있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브런치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혹시라도 출간을 제안하는 메일이 오면 어떡하지? 하는 달콤한 김칫국을 마시는 요즘이다.) 공모전에 응모해서 내 소설이 인정받고, 상금까지 받으면 좋다. 정말 좋을 것이다. 그러려면 모든 것을 접고 글에만 몰두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 나는 하지는 않으면서 결과물을 바라는 놀부심보다. 글을 쓰며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 쓰다 보니 자꾸 보여주고 싶다. (제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작가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내 눈에는 한없이 이쁜 아이들이 바깥세상에서도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서랍장을 열고 소설을 꺼낸다. 쓰고 묵혀놓았던 아이들을 씻기고 단장시켜서 밖으로 보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등단을 하고, 문예지에 내 소설이 실리고, 당선소감을 적어 보내고, 반명함판 사진을 찍으면 나는 이제부터 소설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알겠다. 나는 오래전부터 소설가 레마누가 되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르지도 못했다. 아무리 못난 자식도 부모 눈에는 이쁜 법이다. 이제 나는 내 소설을 더 사랑해 주기로 했다. 당당히 어깨를 펴고, 가슴을 쭉 내밀고 내가 이 아이들을 키웠다고 말할 예정이다. 부족하면 채워 넣고, 모자라면 더해주고, 틀린 건 고쳐가며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성공은 뭐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 끝까지 해낼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내가 하는 일들이 하찮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나를 사랑한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이 우리를 단련한다. 고통에도 곤혹과 불안에 빠져들지 않는 자만이 위대함에 도달할 수 있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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