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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by 레마누

작은 슬레이트집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삼촌, 젊은 부부와 딸 셋이 살고 있었다. 힘이 세고 키가 큰 아빠는 해마다 겨울이면 어디선가 최대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나무를 베어왔다. 세 자매는 아빠가 가져온 나무에 색종이를 오려 만든 종과 꽃을 달았다. 문방구에서 산 반짝이를 두르면 그럴싸한 트리가 됐다. 60초 백열등 불빛이 은은한 집은 안방에만 보일러가 됐는데, 그래서 추운 날이면 온 가족이 안방에 깔린 이불속에 옹기종기 들어갔다. 종합과자선물세트를 사 오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처럼 보였다.


최대한 큰 양말을 찾아 걸어놓고, 소원을 빌고 나서 잠이 들었다.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올까? 올 때까지 잠을 자지 말아야지. 하는 사이 유리창문이 덜컹거리고,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마루 건너 안방에선 엄마와 아빠의 대화소리가 들리고, 저녁 먹으며 땠던 아궁이의 불은 꺼져서 방바닥이 식어가는데, 동생 둘은 양쪽에서 이불을 잡아당기고 새근새근 잘만 잤다.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일어나 양말을 확인했다. 오백 원짜리 동전 세 개가 있었다. 포장지에 싸인 선물 같은 건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백 원에도 감사했지만, 나는 어쩌면 산타할아버지가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슬퍼졌다. 열 살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됐고, 해마다 이맘때면 산타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울지 말라고 협박하며, 은밀하게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알아본다. 알 거 다 알아버린 중2딸은 산타라는 말만 들어도 코웃음을 친다. 아직 긴가민가 하는 초5아들은 올해만 지나면 누나 쪽으로 갈 것 같다. 문제는 10살 막둥이다.




우리 집은 12월 1일이 되면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다.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지만, 까먹지 않는 행사다. 딱히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12월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내고 싶은 내 욕심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트리에 불을 켠다. 종일 우리 집 거실에선 트리가 반짝거린다.



막둥이는 해마다 트리밑에 산타할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써서 놓는다. 편지 안에는 안부인사와 함께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을 써 놓는다. 삼 년 전에 깜빡하고 편지를 읽지 않고, 내 마음대로 선물을 준비했다가 난리가 났다. 왜 산타할아버지는 편지도 안 읽었냐는 말에 아빠와 나는 눈만 껌뻑거렸다.


올해 막둥이가 갖고 싶은 선물은 모루인형 만들기 세트다. 요즘 다이소에서 산 모루인형 만들기로 부지런히 인형을 만들고 있는데, 아무래도 비슷하다 보니 새로운 걸 갖고 싶은 것 같다. 문제는 내가 너무 늦게 편지를 읽었다는 거다. 우편으로 주문하면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아 시내에 있는 선물가게를 돌며 이런저런 대신할 것을 찾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얼추 비슷한 것을 사고 왔다.



막둥이네 반 아이들과 나눠먹을 과자를 준비했다. 막둥이네반은 유독 다정한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어린이날이나, 핼러윈, 빼빼로데이 때 선물을 많이 받았다. 여행 갔다 오면 꼭 그 나라의 과자들이 가득 들어있는 선물을 들고 왔다. 계속 받기만 한 게 마음에 걸려 한번은 나도 해야지 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 겸해서 준비했다


그런데 그것도 해 본 사람이 하는 건가 보다. 대충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골라 담는데, 자신이 없었다. 포장용지를 고르는 것부터 담는 것까지 은근 신경이 쓰였다. 막둥이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엄마, 괜찮아. 이 정도면 잘하는 거야. 엄마는 처음 해 보는 거잖아.

그렇게 말한다. 앞으로 더 잘하라는 말인지, 계속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막둥이에게 카드를 쓰라고 했더니 책상에 앉아 반친구들을 떠올리며 각자에게 맞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카드에 쓰면 돈이 든다며 자기가 직접 만든 게 예쁘고 의미 있다고 말한다. 나보다 열다섯 배는 나은 아이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쓴 것처럼 카드에 메시지를 적어 넣을 예정이다. 작년에 왼손으로 썼더니 아들이 살짝 의심하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컴퓨터로 써야겠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카드를 고르고, 포장지를 사서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포장한다. 아무것도 모른 체 시치미를 떼고 잠이 들면, 늦은 밤에 남편이 트리 아래 선물을 놓아둔다.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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