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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세남매 이야기

by 레마누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 할 일을 적는다. 10시에 올리브영에 가서 헤어스프레이와 헤어젤사기. 다이소에서 검은 머리끈, 가는 빗 사기, 돌아와서 라따뚜이 만들어서 언니 갖다 주기. 오후에 아이들 의상 챙겨서 4시 30분까지 공연장 가기.



오늘은 막둥이의 첫 바이올린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매번 언니, 오빠의 공연을 객석에서 보기만 했던 막둥이가 언니와 똑같은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떨리지 않느냐는 말에 괜찮다고 하는데, 엄마인 내가 왜 더 떨리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 세 남매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큰 딸은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배웠고, 동생들도 그때쯤 그만둘 예정이다. 일주일에 두 번 레슨 선생님이 오셔서 30분씩 수업을 하신다. 언니가 하는 걸 보며 피아노에 흥미를 보이던 세 살 터울의 아들도 6살이 되자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웠다. 오빠를 자기 밑이라고 생각하는 15개월 차이의 막둥이는 오빠 하는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으로 레슨을 시작하기 전부터 피아노건반을 두들기며 놀았다.


엄마 역할이 처음이어서 그랬을까? 큰 딸은 어렸을 때 한 게 많았다. 돌도 되기 전에 이마트 문화센터수업을 두세 개 들은 걸 시작으로 돌 때쯤 기적의 도서관 북스타트에 다녔다. 6살 때 발레학원을 시작으로 1학년때 합창단에 들어가 활동했다.


엄마의 로망이었고, 욕심이었다. 말 잘 듣고, 예쁜 큰 딸은 엄마가 하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따랐다. 나는 큰 딸이 예체능에 능하길 원했다. 음악을 사랑하고 미술로 표현하는 아이로 크길 바랐다.



합창단 정기공연날 찬조출연한 바이올린 앙상블을 보고, 첫눈에 반한 큰 딸에게 바이올린을 쥐어줬다. 학교 방과 후를 시작으로 음악바우처선생님을 알아보고, 바이올린을 시작한 게 4년째다. 최대한 돈은 적게 지출하면서 최고의 성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고민했다. 토요일 오후 5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연습하는 바이올린 앙상블은 일 년에 두 번 정기연주회를 갖는데, 공연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



중학교 2학년인 큰 딸은 앙상블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학교 바이올린 동아리에서도 활동하는데,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한다. 가끔 속상할 일이 있을 때는 피아노를 성내며 두들기다 바이올린을 잡는다. 큰 아이가 바이올린을 꺼내면, 텔레비전을 보던 아들과 그림을 그리던 막둥이가 일어난다. 셋이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그래, 내가 이 장면을 위해 주말에 친구들 모임에도 안 가고 아이들을 픽업했지.



어렸을 때 동네에서 유일한 이층 양옥집이 있었다. 학교에서 끝나서 집에 오다 보면 그 집에서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피아노연주를 들었다. 아름답고 명롱 한 피아노선율은 비루한 이 세계를 잊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았다.



엄마에게 피아노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가 플라스틱 옷걸이로 등을 얻어맞은 날은 속상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아빠는 멜로디언을 내밀며 피아노와 다를 게 없다고 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집이 가난한 것도 싫었지만,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더 싫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음악시간에 들은 "엘리제를 위하여"에 반했던 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베토벤의 전기를 읽으며 그를 동경했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베토벤이다.


글을 시작할 때는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얼떨결에 작년 겨울 자모회 모임에서 얼떨결에 회장으로 선출됐다. 음악에 대해 1도 모르고, 연주회 때마다 늦게 와서 안 된다고 했더니 다른 엄마들이 애 셋을 앙상블에 보내는 것만으로 자격은 충분하다며 추켜줬다. 능력은 없어도 앙상블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걸 사실이라 몇 번 거절하다 회장을 맡았다.


오늘 열리는 신년연주회를 끝으로 앙상블은 방학에 들어간다. 그리고 오늘까지는 작년 자모회장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회장이 개인적인 이유로 불참하게 됐고,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회 날 여자아이들은 올백머리를 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는다. 전에 보니 회장님이 헤어스프레이와 머리끈을 준비하고, 거울 앞에서 부지런히 아이들의 머리를 묶어줬던 게 기억났다. 그래, 그걸 하자.


예전에는 우리 아이들 머리만 신경 썼는데, 지금부터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준비물을 미리 공지해도 뭔가 까먹거나 안 가져오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는 세 아이들을 챙기면서, 또 전체 회원들의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완벽하게 무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갑자기 없던 책임감이 솟아났다.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겠지? 오늘 공연이 무사히 끝나고 아이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오늘 있을 일을 미리 생각하고, 동선을 확인한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다. 오늘도 부디 무탈하게 지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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