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녁메뉴는 감자탕입니다.

감자탕 끓이는 거 어렵지 않아요.

by 레마누

겨울방학이 길다. 1월 초에 방학해서 3월 4일 개학한다. 사랑하는 세 아이들이 집에 있다. 날씨가 나쁜 날은 남편도 집에 있다. 나도 집에 있다. 집이 들썩들썩 인다. 행복하다. 물론 행복하지만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일어나야 겨우 3시간 내 것이 된다.



일부러 걸어서 시장에 간다. 마트도 혼자 간다. 부지런을 떨며 식사를 준비할 때는 부엌문을 닫는다. 유튜브를 보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 우리는 핸드폰보지 말라고 하면서 왜 엄마는 봐요?라는 질문에 우물쭈물거리며 엄마의 체면을 떨어뜨리기 싫다.


언제 밥 먹어요? 몇 분 남았어요? 공부 끝내고 나면 목소리가 높아진다.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엄마는 밥을 차리는 사람이라며 선을 긋는다. 딱히 반박을 하지 못한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예요? 감자탕. 앗싸!!!!


집 앞 고깃집에서 삼겹살과 돼지잡뼈를 사고 왔다. 어제 삼겹살과 김치를 구워 뽕그랗게 먹었다. 다섯 식구의 얼굴이 반지르르해졌다. 오늘 저녁은 감자탕이다. 우리 식구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다행이다. 일주일 내내 돼지고기를 먹어도 춤추면서 식탁에 앉는다. 정말 다행이다.


검정비닐에 들어있는 3킬로 잡뼈를 만원에 사고 왔다.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한 번 바르륵 끓였다.

끓인 물이 탁하고 지저분하다. 고기를 건져내고, 냄비를 씻었다.

물을 넣고 소주를 부었다.

대파와 양파, 된장을 조금 풀어 오랫동안 끓인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는 종종 돼지추렴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돈을 모아 돼지 한 마리를 사서 직접 돼지를 잡았다. 각 집에 들어갈 고깃덩어리를 나누고 남은 것들을 모아 한 솥에 끓으면 진한 고기냄새가 길을 따라 퍼진다. 고기가 뼈에서 절로 떨어져 나갈 정도가 되면 바닷가에세 캐 온 모자반을 넣는다. 어른들이 몸국에 소주를 마시는 동안, 엄마 따라온 아이들도 고깃국을 먹었다. 기름지고 진하면서 담백한 고기국물을 먹으면 속이 든든한데, 이럴 때 제주 사람들은 "베지근하다"라고 말한다. 나는 베지근한 고기국수, 베지근한 몸국, 베지근한 접착뼛국을 좋아한다.


센 불에 고기가 한바탕 끓으면 중간불로 줄이고 세 시간 정도 끓인다.

가끔 들여다보며 거품을 걷어낸다.

푹 끓여지면 다진 마늘과 김치 하다 남은 양념을 넣고 알배추를 넣는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털이를 한다.

간을 봤더니 심심하다.

묵은지에서 파란 이파리 부분을 골라내 집어넣는다.

시래기가 넣으면 좋겠지만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한다.


감자탕에도 닭볶음탕에도 김치가 들어간다. 우리 집 식구들이 돼지고기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김치다. 잘 익은 김치를 넣고 끓인 찌개는 물론이고, 뭐든 김치만 들어가면 맛있다고 한다. 김장김치를 해야 하는 이유다. 사다 먹는 김치로는 감당할 수 없다.


집에서 끓이는 감자탕


감자탕의 생명은 들깨가루다. 양념이 애매해도 들깨가루가 들어가면 맛이 확 살아난다. 진정한 마법의 가루다. 고기를 많이 넣고 끓인 국물은 진하고, 신김치가 들어가 양념맛을 보태줬다. 과하다 싶게 뿌린 들깨가루가 고소하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 재료의 맛을 살려서 끓인 감자탕은 깔끔하다.



후식도 야무지게, 아이스크림은 퍼먹어야 제 맛


식사하세요. 차린 건 없지만 푸짐한 저녁상이 완성됐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들어온다. 엄마 뿌듯이다. 금방 한 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감자탕 국물은 뜨겁고, 고기는 야들야들하니 부러울 게 없는 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 깻잎대신 사고 온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었다. 무탈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사족: 김자탕양념하기전에 뼈 네개와 국물을 냄비에 덜었다. 내일 고기살만 바르고, 무를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끓이면 삼삼하면서 또다른 베지근함이 느껴지는 고깃국이 된다. 만원어치 잡뼈로 두 번의 저녁상을 차릴 수 있다. 진정한 만원의 행복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루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