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어머니는 굿과 무당을 신봉했다. 사업으로 자수성가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원래 그런 성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사와 명절을 성대히 치르고 때마다 산속으로 기도를 다니고 용하다는 점집과 보살을 꿰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두 번의 유산을 겪고 7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시어머니는 자신이 아는 모든 민간요법을 나에게 강요했다.
철학관과 보살집을 돌아다녔다. 작은 상을 사이에 두고 보살들은 주변에 죽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언제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서른이었고 그때만 해도 주변에 죽은 사람은 드물었었다. 시어머니까지 들어서 자꾸 생각해 내라고 했다. 누구라도 떠올라야 했다.
-우리 대학교 1학년 때 왜 영희가 죽었잖아
-그렇지
-왜 죽었지?
-너 몰랐어? 걔 약 먹고 죽었잖아
동네친구라고 하기엔 그렇고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이 있었다. 친구라고 말을 섣불리 못했던 건 초등학교 때도 같은 반이었을 뿐 거의 말을 섞지 않았던 아이였다.
대학1학년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갔는데 친한 친구가 갑자기 영희네 집에 병문안을 가자고 전화가 왔다. 영희가 많이 아프다며 한번 가보자길래 나는 선뜻 그러자고 했다. 스무 살이었고 멋 부리기에 빠져 있었다. 새로 산 분홍블라우스를 입고 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화사하다며 칭찬을 해 줬다. 괜히 어깨 한번 으쓱하고 영희네 집으로 들어갔다.
영희는 할머니와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원래 몸이 안 좋았는데 감기에 걸린 줄 알고 며칠 동안 감기약만 먹었다고 한다. 열이 안 떨어져서 종합병원에 갔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며 벽에 기대앉은 영희는 초등학교 때 얼굴 그대로였다. 작고 마른 영희가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영희는 나와 계속 눈을 마주치며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늘어진 면티사이로 보이는 앙상한 영희의 속살과 주삿바늘로 가득한 팔. 영희의 손을 잡고 얼른 나으라고 말을 하고 준비해 간 음료수를 주고 나왔다. 그리고 한 달도 못 돼 영희는 죽었다.
그 후에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영희가 꿈에 나오기 시작했다. 선명하고 생생한 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영희와 내가 꿈속에서 너무 친하다는 것이었다. 제일 친한 친구였다. 어디든 같이 가고 함께 웃었다. 꿈속에서 한바탕 놀고 잠이 깨면 온몸이 아팠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한동안 비슷한 꿈을 꿨다. 하도 이상해서 그때 같이 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데 영희가 너 좋아했던 거 알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영희가 너 가고 나서 할머니한테 블라우스를 사 달라고 한 모양이야. 너랑 똑같은 블라우스 입고 싶다고. 할머니는 사줄 테니까 얼른 나으라고 했대. 근데 그 소리를 술 취한 걔네 아빠가 듣고는 영희에게 엄청 욕을 했다는 거야. 걷지도 못하는 것이 옷은 사서 뭐 할 거냐고. 병신같이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할머니는 말리고 걔네 아빠 알지? 술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영희가 며칠 동안 밥을 안 먹고 누워만 있었다더라.
그러다 걔가
다리도 못 움직이는 걔가 기어서 현관까지 간 거야. 농약병 가지러.
팔로 기어간 거지. 기어이 제초제약 먹고 죽었잖아. 할머니가 발견하고.
몰랐다. 정말 몰랐다. 몰랐다는 말로 용서가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나는 몰랐다. 나의 스무 살이 그 빛나던 한 때가 누군가의 눈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됐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괴로웠다. 그리고 왜 친하지도 않았던 영희가 그렇게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 후 나는 혼자 보살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아이의 혼을 달래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내 옆에서 떠나지 못하는 게 영희인지 아닌지 보살이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실을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초를 켜고, 예쁜 블라우스를 사서 불에 태우고, 산에 가서 기도를 했다. 진심으로 영희를 위해 기도했다.
그 후 아이가 생기고 쪽잠을 자게 되면서 영희는 더 이상 꿈에 나오지 않았다.
가끔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그 시간들이.
그건 무슨 마음일까? 나는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순전히 내가 편안하기 위해 내가 살려고 했던 그 모든 행위들은 이기심의 발로였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나를 먼저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섭섭하거나 실망할 일이 아니다. 내가 그때 거액의 돈을 들여가며 굿을 하고 기도를 했던 건 영희가 마음 편히 지내면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그럼 아기도 생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당치도 않을 미신이라며 손사래를 치겠지만 그때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고, 만에 하나라도 걸리는 게 있다면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했다. 절실했다. 모든 것에서 원인을 찾았고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다.
만일 내가 결혼을 하자마자 아기를 낳고 아무 문제 없이 살았다면 영희를 기억할 일은 없었지도 모른다.
현재의 행복에 겨워 지난날을 까맣게 잊고 살다 어느 날 불행이 찾아오면 당황하며 원망할 누군가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불행이었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모난 돌이었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서 술술 풀리는 일들이 마치 내가 잘해서 되는 거라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녔다. 결혼하고 7년 동안 깎이고 깎이며 둥그런 조약돌이 되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곤 했다.
앞만 보고 뛰다 보면 지나쳐가는 주변의 풍경들을 볼 수 없다. 적당히 하라는 신호를 받고 잠시 숨을 몰아쉬던지 쉬어가라는 표시였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두렵고 걱정되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에게 기도를 한다.
나의 의미 없는 행동이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선의를 갖고 한다는 말과 행동이 오해를 부르거나 잘못 전달되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누군가가 다치거나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