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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이는 글

by 레마누

냉장고를 정리하다 된장 통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유리 파편에 달라붙은 된장이 사방에 흩어졌다. 거실에 있던 아이들이 놀라 달려왔다. 나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치고는 물티슈를 꺼내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조각난 유리 조각을 집다 손가락이 베였다. 피가 났다. 막둥이가 멀리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괜찮다고 말하고, 걸레를 빨았다. 물티슈로 두 번 닦은 바닥을 물걸레질했다. 된장 냄새가 사라졌다.



그제야 손가락이 쓰려왔다. 막둥이가 후시딘과 대일밴드를 들고 왔다. 아들이 소독 먼저 해야 한다며 알코올 솜을 꺼냈다. 눌러 놓은 화장지를 떼자 금세 피가 고였다. 아이들이 쳐다봤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아픈 척했다. 막둥이가 대일밴드에 좋아하는 가수 이름을 쓰고 단단하게 붙여줬다.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픈 건 마음이었다.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했다. 혼자 낑낑거리고 있었는데, 된장 통이 깨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실컷 아픈 티를 냈다.


왜 아플까?


목요일 오전 지담 작가님과 목요일 글쓰기 팀의 온라인 만남이 있었다. 자신만의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쓴 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내 글이 제일 처음 불리는 순간부터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사기꾼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기꾼이 사기에 성공하려면 진짜처럼 보여야 하는데, 그때 참고하는 것이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만의 이미지로 사람을 평가한다. 모범생 하면 뿔테안경, 긴 생머리는 청순가련, 오토바이와 가죽바지는 터프가이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사기꾼들은 그런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현혹시킨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모습으로.



왜 그럴까? 그들에게는 진짜가 없기 때문이다. 전교 1등이 서클 렌즈를 낄 수도 있고, 마음은 한없이 약하지만, 민소매를 입고 근육질 몸매를 뽐낼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진짜가 없는 사람일수록 보이는 것에 신경 쓴다. 가짜인 걸 들통날까 봐. 상대가 알아차릴까 봐.



내가 제출한 글은 검사받기 위한 글이었다. 여기저기서 긁어모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낸 글이었다. 누구나 쓸 수 있고, 아무나 읽어도 되는 글. 내 이름을 달아서 제출한 글에 나는 없었다. 그걸 간파당했다. 그래서 부끄럽고 아팠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 글을 읽어야 할 이유는 뭘까?

내 글은 다른 사람의 글과 뭐가 다른가?



좋은 글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글이다. 아무리 좋은 그릇에 담겨 있어도 그것이 독이라면 사람들은 먹지 않을 것이다. 반면 소박하고 작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은 그릇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용이 좋으면 글이 부족해도 좋은 글로 기억된다.


그것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좋은 글이 어떤 글인지 알고 있다. 배웠는데,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모르면서 하는 건 넘어갈 수 있다. 알아가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알면서도 잘못하는 건 고치기 힘들다. 이미 나만의 생각으로 똘똘 뭉쳐진 것을 깨뜨려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나만의 글쓰기가 된다. 단단하게 굳어진 생각과 아집을 깨뜨리려면 그보다 더 센 것이 필요하다. 십중팔구 아플 것이다. 행여나 아플까, 힘들까 염려하는 마음이 변화를 막고 있었다.



그래서 고만고만한 글을 쓴다. 술술 읽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글을 쓰고 만족한다. 더 깊이 들어갈 자신이 없다. 혹은 노력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 쓴 것도 대단한 거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제 쓴 글이나 오늘 쓴 글이, 작년이나 지금이나 그 글이 그 글이다.



인정하자. 내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글이다. 쓰면서 들통날까 망설인다. 적당히 좋은 말을 잘 이어 붙이며 쉽게 써진다고 좋아했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잔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몰아내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를 떠올렸다. 뻔하다. 너무 뻔해서 가슴이 아프다. 아픈 걸 보는 내가 말한다. 그러니까 잘해.



뭘 잘할까??



글을 잘 쓰자. 어떤 글을 쓸까? 솔직한 글을 쓰자. 어떻게 써야 솔직한 걸까? 의식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글을 쓰자. 누구를 의식하며 살았을까? 보이는 글을 쓰면서 읽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썼다. 내 생각을 드러내면 혹시 돌아설까 두려워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게 가능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일반적인 글만 썼다. 뻔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면 적어도 잘못됐다고 비난을 받지는 않을 테니까.


두려웠다. 속이 드러나는 글을 쓰면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어떤 사람들? 그냥 내 글을 읽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뭔데? 인기가 많으면 좋을 거 같아?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몇 명을 위해 네 마음을 속이고 있었던 거야? 네 가치가 그것밖에 안 되게 만든 건 바로 너 자신이었구나.



속이 쓰리고 토할 것 같다. 아프다. 핵심을 찔려서 아프고, 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부끄럽다. 그럴 듯 해 보이는 포장지로 온갖 정성을 들였는데, 텅 빈 강정이었다는 것을 들켰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채워 넣어야지. 이젠 포장할 시간이 없다. 비어 있는 속에 뭐라도 꾹꾹 집어넣어야 한다. 있는 힘껏 집어넣다 보면, 언젠가 뭐라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된다. 바닥을 다지는 일에 공을 들이자. 높은 건물을 세워도 흔들리지 않게 시간과 공을 들여 기초공사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아픈 것도 시간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아프다고 징징거릴 때가 아니다. 후시딘 바르고 대일밴드 붙이고 다시 일어설 시간이다. 다행히도 내겐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고, 좋은 글벗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 오늘의 다짐이다. 글을 쓰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잘 먹고,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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