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노선은 내가 만든다
마지노선 : 최후의 보루, 마지막 한계, 데드 라인 등의 의미로 쓰임. 제1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 군이 독일 침공을 막기 위해 최전선을 구축한 난공불락 요새였고, 전쟁 후 프랑스 장군의 이름 '마지노'와 線을 따서 마지노선이라 부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한계선을 의미하는 관용적 표현.
2월 독서모임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였다. 2년이 넘게 봐온 독서모임의 회원들은 이미 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성공을 이룬 사람들답게 시간관리를 잘하고 있었다. 유일한 전업주부인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자극이 되는 시간이었다.
독서모임의 리더는 내 주변의 사람들 중 가장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깊은 귀감이 됐다.
한참 블로그에 글을 쓰던 3년 전쯤이다. 글을 쓰고, 독서를 한다는 공통점으로 만나 이웃이 되고,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의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그가 바로 답했다. 새벽 5시였다.
그가 새벽에 소설을 쓰고, 출근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바로 답이 와서 신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새벽에 종종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알면 알수록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자기 관리는 물론, 직장 내에서도 똑 부러지게 일을 해내는 모습이 멋있었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그를 보며, 내게는 없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그를 닮고 싶었다. 무작정 그가 하는 일을 따라 했다.
그가 2년이 넘게 꾸준히 보여 준 모습은 성실함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어떻게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을 내조하고,
소설을 쓰고,
운동을 매일 할 수 있는지.
그는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길래 여러 사람의 몫을 척척 잘 해내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건 흉내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2월 독서모임에서 나는 그 비결을 알았다. 그와 나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리더는 자신만의 시간관리의 철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지노선은 내가 정한다"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정해준 마감일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일을 한다는 말이었다. 마감일을 생각하지 않고, 미리 해 놓는다. 남이 정한 마지노선에 맞추지 않는다. 마지노선은 내가 정한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 번도 미리 해 본 적이 없다. 항상 닥쳐야 했다. 개학 전날 한 단치의 일기를 쓰느라 밤을 지새우거나 , 물감이 마르지 않은 그림을 들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괜찮다고, 시간은 많다고 하며 미루는 게 일이었고, 습관이었다.
시험이 닥쳐야 벼락치기 공부를 했고, 내일이 마감일이라면 오늘 밤에 글을 썼다. 정답을 알듯 모를 듯했고,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했다. 과정이 없으니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자기 의지를 갖고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과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은 사람의 시간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다. 그와 내가 새벽에 만나 글을 쓰면서 사용한 시간의 양은 비슷할지 몰라도 시간의 질은 천지차이였고,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그는 목표한 대로 일 년에 한 권씩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매일 운동하고, 독서하며, 기록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월말에 기록한 것을 올릴 때마다 초반에 쓰다 만 나의 노트가 부끄럽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당당할 수 있게 해 줘야 하는데, 자꾸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알고 있는 것을 행하지 못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사랑하는 걸까? 정신바짝 차리라고 이렇게 해선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나태해진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뭘 했다고 매번 힘들다고 징징대고 있단 말인가!!
도대체 네가 뭘 했다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요일 연재에 쓸 글을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시작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마지노선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그것에 대해 쓰고 있다. 쓸거리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파고들어야 하는데, 생각이 나는 것이 있다고 신이 나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해야 하는 것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내가 제일 못하고 고치고 싶은 건데, 고치겠다는 생각만 한다. 어쩌면 고칠 생각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단 '마지노선'에 대해 쓰고 나서 '엄마의 유산'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오늘이 가기 전에 쓴다. 써야 한다. 나는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일단 생각하지 말고, 뭐라도 써 보자!!!!!
마지노선은 내가 정한다.
나도 좀 그렇게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