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나는 임신 5개월이었다. 누런 베옷으로도 제법 나온 배를 가릴 수 없었다. 내가 울려고 하면 사람들은 달려와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라고 말했다. 절을 하려고 하면 또 사람들이 달려와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죽은 엄마보다 임신한 나를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49일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불공을 지냈다. 엄마의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배가 나와 절을 못하는 나와 남편이, 엄마의 죽음으로 유산이 된 둘째가, 아이를 낳은 지 일 년이 안 된 셋째가, 뉴질랜드 유학을 포기한 막내 동생이 절을 했다. 아빠는 불공하는 내내 바깥에서 담배를 피웠다.
스님의 목탁소리를 들으며 절을 하는데,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울음을 참다가 동생의 울음소리에 터져 나오는 통곡을 입으로 막으며, 우리 네 남매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불러도 보고, 불쌍한 우리 엄마, 고생만 하다 간 엄마 어뜩해. 통곡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진이 빠졌다.
일주일에 한 번 새벽 4시에 엄마를 잃은 4남매가 법당에서 절을 했다. 스님의 독송소리를 들으며 울었다. 울먹이는 소리가 목탁소리보다 커졌을 때 주지스님이 말씀하셨다. 슬픔은 이해하지만 어머님을 잘 보내드려야 합니다. 억울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접고 어머님의 업장을 소멸하여 극락왕생하시기를 빌어드리세요.
하지만 사람 맘이란 게 간단하지 않아서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았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속상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 나쁜 일을 틈날 때마다 꺼내 들었다. 마음이 굳어지면 말이 날카롭다. 하루는 넋이 빠지고 하루는 허망하고고 하루는 분노했다
죽은 엄마의 영가가 이생에 미련이 남았던 게 아니다. 내가 엄마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헥헥대며 출산과 육아를 하는 동안 친정엄마가 있었으면 덜 힘들었을텐데 생각했다. 나의 필요에 의해 엄마를 찾았다. 그게 그리움인 줄 알았다. 힘들 땐 생각나고 살만하면 잊어버렸다. 한걸음 떨어져서 본 그리움의 실체는 엄마를 잃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이기심이었다.
오늘은 음력 2월 15일.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열반재일 법회가 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서둘러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 주지스님은 설법 대신 부처님의 유언을 함께 읽자고 하셨다.
너희 제자들이여,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내가 일 겁을 더 산다 해도 때가 되면 떠난다. 헤어짐이 없는 만남이란 끝내 있을 수 없다. 나와 남을 이롭게 하였고, 그 가르침을 빠짐없이 완성하였다. 내가 오래 머물더라도 별다른 이익이 없다.
내가 인도해야 할 중생들은 천상이나 지상에 관계없이 모두 제도하였다.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도 전부 해탈할 수 있는 인연을 이미 만들어 주었다. 지금부터 내 모든 제자들은 가르침을 세세생생 전수하고 부지런히 수행하라. 그러면 여래의 법신은 항상 머물러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땅히 알라.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한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 슬퍼하거나 고뇌하지 말라.
세상의 모습은 이와 같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하루빨리 해탈하라. 지혜 광명으로 모든 어리석음을 없애라.
세상은 진실로 위태롭고 허망한 것이다. 내가 이제 열반에 듦은 마치 몹쓸 병에서 벗어나는 일과 같다.
이렇게 때가 되면 마땅히 버려야 할 몸이건만, 중생들은 죄악의 산물을 망령되게 변치 않는 몸이라 여기고, 생로병사의 큰 바다에 빠져 허우적댄다. 지혜로운 이가 이를 소멸시켜 준다면 원수를 없앤 것과 같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너희 제자들이여! 항상 한마음으로 정진하여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라. 온 세상 변하거나 변치 않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와 현상들은, 전부 허물어질 불안정한 것들이다. 그대들이여,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시간이 지나는구나. 나는 열반에 들겠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지금도 나는 엄마가 모셔둔 법당에서 절을 하면 눈물이 난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만, 아직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모든 것이 슬프고, 아프다. 왜 착한 사람은 먼저 가고, 독한 사람은 질기게 살아남는지 모르겠다. 왜 좋은 건 짧고, 싫고 미운 건 오래가는지, 왜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살 수 없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절을 한다. 머리를 조아리고 나를 낮춘다. 공손히 손바닥을 올리며 말씀을 듣는다. 한없이 부족한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부디 제도해 주십사. 기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힘을 주심에 감사드린다. 돌아보면 감사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엄마의 죽음이후, 나는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간절하게 아이를 원하자 하늘은 내게 아이를 내려주는 대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를 데려갔다. 좋은 거 두 개를 한꺼번에 갖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통이 찾아오자 비로소 내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누구나 순서가 오면 겪는 일이고, 그 순서가 조금 빨리 왔을 뿐이라는 것을. 그날이 갑자기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게 하루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부처님의 유언을 읽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