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저녁

by 레마누



70세의 이미도씨는 오랜 통화를 끝내자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물을 들이켰다. 한 모금에 숨이 막히게 마셨는데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심장은 뛰는데 통화로 다 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 차 있어 속이 답답했다.


아고아고.

오른손으로 왼가슴을 쳐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른 이마가 지끈거린다. 냄비 안에 겨둔 담배 생각이 간절하지만, 곧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이미도씨가 타이레놀 두 알을 삼키고 돌아서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큰조카였다. 이놈의 시짜들이 돌아가면서 난리네. 인상을 쓰며 전화를 받는다.


“작은 엄마. 어떻게 지내세요?”

“어. 오랜만이야.”(어떻게 지내긴.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이놈아. 설은 다가오는데 니네 아빠는 끔쩍도 안 하고. 이번 설에도 나는 니네 집에 가서 종놀이를 해야 한다. 내가 왜? 응? 다 늙은 내가 가서 청소하고 음식하고 하는데 누가 하나 잘한다는 사람 없고. 못 살겠다. 말을 삼키는라 목이 메여 기침이 나왔다.)



“감기 걸리셨어요?”

“아니야. 뭐. 그렇지. 왜? 무슨 일이야?”

“작은 엄마가 이번에도 고생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동생들이랑 내려가서 집을 청소해 놓을게요. 그러니까 작은 엄마는 청소안하셔도 돼요.”

(얘네들이 왜 그러지? 무슨 말을 들었나? )



“어. 그러주면 나야 고맙지.”

“아니예요. 작은 엄마 고생하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아빠는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는지 상황이 안 되면 못 할 수도 있는 건데. 제사고 명절이고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산 사람이 먼저지.”

스무 살 어린 조카의 말 하나가 이미도씨의 마음을 건드렸다. 참고 참았던 말이 울컥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고. 진짜 내가 못 살겠다. 안 그래도 아까 니네 고모 전화와서 나를 쥐잡듯이 잡는데. 아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대접을 받는지 한심하고 억울하고 속상해서 진짜 딱 죽고만 싶다게.



나이 70이면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 다 키워놓고 놀러나 다닌다는데, 나는 니네 엄마 죽고 나서 생판 모르는 여자한테 형님소리 해가멍 살다보난 그 여자는 순 사기꾼이었고, 니네 아방은 그런 것도 모르고 나만 욕하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니. 난 정말 내 앞이 캄캄이라.



아이들이 똑바로 사는 것도 아니고, 서방이라고 있는 건 형한테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고모는 맨날 나한테만 전화해서 잘 하라고 하는데 아니 뭘 어떻게 잘하라는 거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응. 아명 시누이랜 해도 난 이 니네 고모 잘도 웃길 때 있다. 아니 어머니 아팡 누웠을 때는 똥기저귀 한 번 안 갈았으면서 죽으난 제사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랜 하는거? 어? 아닌 말로 니네 어멍이나 나나 다른 집에서 온 사람들인데, 속 뒤집혀가멍 할망병구환은 우리가 다 하고. 지네는 뭘 했다고? 어?



아닌 말로 산 사람이 중요하지. 언제부터 효자고 효녀랜. 있을 때나 잘하지. 웃겨 증말. 무사 경 제사 잘 촐리라 명절 잘허라 말하맨? 나 진짜 어이 어실 때가 많아. 꼴도 보기 싫다게. 이놈의 집구석들.



낙이 없다. 낙이. 이때쯤되면 살만할 줄 알고 젊을 때는 참앙 살아신디. 이제와 보난 앞으로 더 좋아질 것 닮지도 않고. 아니지 더 나빠질거주게. 난 아플 일만 남았고, 일은 끝도 없고. 아이들이 그렇다고 호강시켜줄 것도 안 닮고.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이 없다. 희망이. 정말 싫다. 나가 딱 죽고 싶다게.



한 번 나오기로 작정하자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다. 이미도씨는 말을 하는 도중 말에 취했다. 말을 하다 보니 자신의 신세가 하도 딱해서 눈물이 났다. 상대는 그저 이미도씨의 말을 들어주었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이미도씨가 말을 마친 건 현관문이 열리며 아들이 들어왔을 때였다.



”그래, 그래. 설준비랑 걱정하지 말고. 니네가 청소해주면 나야 고맙지. 어. 알아서 적당히 차릴께. 그래. 너도 아프지 말고. 고생해라. 고맙다.“

이미도씨는 전화를 끊고 나서 손가락으로 눈가를 누르며 가스불을 켰다. 얼마 후 부엌에는 진한 된장찌개냄새가 퍼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 병리적 상처를 정신 요법이나 정신 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 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수감자 중에 몇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 그런 목표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인간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주1)


(주1)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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