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공주

by 레마누
커피사진.jpg


70년대에 결혼한 희진의 부모님은 갑장들이 결혼하자마자 혹은 결혼하기도 전에 아이를 낳는 것을 3년 동안 지켜만 봤다. 지금처럼 불임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험관이니 인공수정이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새벽에 초를 켜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유별나게 점집을 좋아했던 희진의 할머니는 가는 데마다 굿을 하라는 통에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마지기를 팔았다. 자손을 보자고 하는 거니 조상님도 이해할 거라며 보살에게 하얀 보자기로 싼 돈뭉치를 건넬 때마다 어머니는 속이 타들어 갔다고 했다.


보살이 온갖 정성을 다해서 굿을 한 덕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결혼 3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아버지가 좋은 데서 들어왔다며 '희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였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꿈을 꿀 때가 더 좋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은 차라리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도 있다. 어머니는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데, 아무리 봐도 달을 채운 아이 같지 않았다. 출산일을 열흘이나 넘겨 나온 희진은 몸무게가 2.1킬로였고, 머리통이 유난히 작았다. 미리 만들어놓은 배냇저고리의 소매를 세 단 접어야 손이 보였다. 얼굴도 손도 발도 작은데 눈만 커다란 희진이는 잘 만든 인형 같았다.


할머니는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고개를 휙 돌려 앉았다. 어머니는 아이를 재우고, 찬바람 들어오는 부엌에서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미역국을 끓였다. 아버지는 큰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하며 좋아했는데, 출산 턱을 내라는 친구들의 성화에 나가 3일 만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안으면 아이가 부러질 것 같다는 이유로 아이를 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희진이가 백 일이 지나자마자 어머니에게 약봉지를 건넸다.

-용하다는 데서 지어왔으니 정성 들여 먹어야 해.

변변한 몸조리를 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눈가에 물이 고였다.

-잘 먹을게요.

-그거 먹은 사람들이 다 아들을 낳았다고 하더라. 잘 챙겨 먹으라.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와 박혔다.


할머니는 집에는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고 말하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머니는 그 후에도 딸만 내리 셋을 낳았다. 기세 등등 하던 할머니도 나중에는 지쳤는지 한약 짓는 것을 멈췄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만취한 채 할머니를 찾아갔다. 자신을 낳아준 할머니에게 아버지는 한 번만 더 아들 낳으라고 하면 집에 불을 싸질러서 다 죽이고 나도 죽을 거라고 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희진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 넷을 낳았다. 임신했다가 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중절수술한 것까지 합하면 십오 년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다.


희진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임신하고, 동생이 태어나고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희진은 입매가 짧고, 배가 자주 아팠다. 식구 많은 집에는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큰언니지만, 집에서 몸집이 가장 작은 희진은 먹을 것에 집착했다. 제가 먹을 것을 동생들에게 뺏겼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이 없으면 다 희진의 차이였을 것들을 동생이랑 나눠 갖는 게 불만이었다. 뭐든 동생들보다 먼저 많이 먹으려고 달려들었다. 문제는 희진의 뱃속이 희진의 욕심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희진은 아무리 기를 쓰고 먹어도 동생만큼 많이 먹지 못했다.


어느 날, 희진은 밥을 먹다 말고 화가 치밀었다. 희진은 밥을 천천히 먹어야 소화가 되는데, 동생은 밥을 씹지 않고 먹는 것 같았다. 속도가 달랐다.

'저렇게 많이 먹으니까 내가 먹을 게 없지.'


희진은 숟가락으로 동생의 머리를 내리쳤다. 밥 먹다 말고 숟가락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동생이 희진을 쳐다봤다. 희진은 여차하면 밥상을 엎어버릴 거야. 생각하며 동생을 노려봤다. 동생은 고개를 숙이고, 이어서 밥을 먹었다. 낭푸니를 감싸 안 듯 팔로 두르고, 고개를 박아서 밥을 먹는 동생을 째려보느라 희진은 밥을 먹지 못했다.

'다른 집에서는 한 사람씩 밥그릇이 있다는데, 왜 우리 집은 항상 낭푸니에 밥을 퍼서 같이 먹을까? '


희진은 동굴 같은 집도, 김치에 된장국만 있어도 밥을 잘 먹는 동생도 싫었다. 동생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낭푸니의 밥은 남아 있지 않았다. 희진은 울고 싶었다. 하지만, 동생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희진은 할 수 없이 집 밖으로 나갔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 옆으로 난 하얗고 작은 길로 들어섰다. 희진은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썼을 뿐인데.

1월 17일 저와 작가님들이 무대에 올라갑니다.

꿈이 어떻게 현실로 나타나는지 궁금하신 작가님들.

보러 와 주세요.^^

이건 말로 해서는 몰라요.

봐야 알아요.


고랑몰라 봐사알주.

KakaoTalk_20260105_123145210.png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3Z4R2VoCVZjnu1j7FOnxVFrJ1a5LaNKu4G7H4Q3GRHTvBsQ/viewform




수요일 연재
이전 04화선을 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