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다 2

by 레마누

순수한 호의를 왜곡할 수도 있는 거였다. 자기만의 선을 그어놓고, 들어오려는 사람을 내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도드라지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데, 혼자만 유난을 떠는 것도 같았다. 매번 신경 쓰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신경이 갔고, 싸한 느낌이 들면, 행동이 움츠러들었다.


사람과의 만남이 점점 어려워졌다. 언제부턴가 통화보다는 문자가, 여럿이 모이는 자리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렇지만, 먹고산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부모 덕분에 주영은 대학시절부터 스스로 사는 법을 찾아야 했다. 주영은 최대한 자신을 숨기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주영은 학원에서 국어선생님으로 불렸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마음을 숨기는 법을 몰랐다. 싫으면 싫은 티를 냈다. 주영은 자신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여중생이 이해됐다. 주영을 따르는 남학생도 좋았다. 아이들은 주영을 속이는 법이 없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말을 해석하고, 행동에 숨겨진 뜻을 찾아내고, 이면을 추측하지 않아서 좋았다. 주영은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환하게 웃고, 심각하게 진지했다. 교실에서 나오는 순간, 주영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MZ세대가 되었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성향의 젊은이가 되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원전체회식이 있었다. 평소의 주영이라면 처음부터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맞은편에 앉은 과학선생님이 주영의 팔을 잡고 놓지 않았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과학선생님은 주영과 비슷한 또래였다. 주영은 내키지 않았지만, 과학선생님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회식에 참석했다.


1차만 하고 집에 가자고 먼저 말한 건 과학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거나하게 술을 마신 과학선생님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주영은 꿔다 놓은 보리짝처럼 과학선생님 옆에 앉아 있었다. 지루한 자리가 끝났다. 주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았다. 주영의 집과 같은 방향이라는 과학선생님과 함께 택시에 올랐을 때였다.


갑자기 김 선생이 택시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 바람에 막 출발하려면 택시운전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이 빨간 김 선생이 뒤를 돌아보며

"저도 같은 방향이여서요."

라고 말했다.

주영의 어깨에 기대 있던 과학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주영은 표정관리를 어떻게 할지 몰랐다. 행선지를 묻는 택시기사에게 세 명이 차례로 사는 동네를 말했다. 주영의 집이 제일 가까웠다. 주영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창 밖으로 돌렸다. 택시가 시내를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영선생님.”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 주영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선 주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 선생이었다. 술냄새를 풍기면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면서 주영의 앞에 있었다.

“저랑 얘기 좀 해요.”

김 선생이 주영의 팔을 잡았다. 불쾌했다. 팔을 빼려고 하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세요? 왜 이러세요.?”

“아니, 그러지 말고, 저랑 잠깐만 얘기해요. 네? 저기 가서 한 잔만 하고 들어가요.”

“너무 늦었어요.”

“그러니까, 딱 한 잔만 더 하자고요. 응?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 응?”


돌아서려는 주영을 김 선생이 와락 껴안았다. 김 선생의 가슴께에 주영의 얼굴이 닿았다. 주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어 숨이 막혔다. 두려웠다. 어두운 골목이, 술 취한 남자가 주영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주영이 안간힘을 쓸수록 김 선생은 힘을 주고 주영을 압박했다. 주영의 주먹질은 그에게 아무 타격을 주지 못했다.


두려움에 이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왜 다들 이 모양인 거야. 왜 다들 이렇게밖에 안 되는 거야. 왜 왜 왜 '


주영이 김 선생을 밀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는 강한 힘으로 밀었다. 방심했던 김 선생이 뒤로 넘어졌고, 주영은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주영의 집은 골목 안에 있었다. 쫓아오기 전에 빨리 대문을 열어야 했다. 김 선생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주영이 사라진 대문을 오랫동안 보다 돌아섰다.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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