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다 1

by 레마누

새로 산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출근한 날이었다.

“주영쌤, 오늘 바지 색깔이 너무 예쁜데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김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김 선생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영에게 말을 걸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영은 소름이 끼쳤다. 주영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었다. 붙임성 좋고, 잘 웃는 김 선생은 학원에서 인기 많은 강사였다. 눈썰미가 좋아서 여자 선생님들이 머리 모양을 바꾸거나, 향수를 뿌린 것, 새 옷을 입고 온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인상을 좌우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깔끔하고 호감 가는 인상은 상대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는데 효과적이다.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학원 강사로서 김 선생의 인기가 높은 것은 비등비등한 실력을 가진 선생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자기 관리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언변 때문이라고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김 선생이 학원에 온 후부터 교무실에 활기가 넘치고, 웃음소리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주영은 김 선생이 주도한 분위기 안에 섞이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건 본능에 가까운 경계였다. 김 선생의 말과 웃음이 묘하게 거슬렸다. 주영이 그어놓은 선 위에서 발을 움직이며 들어올까 말까를 재는 사람 같았다. 그가 발을 딛는 순간 주영의 세계는 흔들린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딱히 꼬집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다 그런 것 같았다. 주영은 김선생의 모든 것이 미묘하게 거슬렸다.


아버지는 교장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지역에서 최연소교장이 된다며 아버지는 좋아했고, 주영은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친구들의 아버지가 작업복을 입고, 담배 냄새를 풍기는 것과는 달리, 주영의 아버지는 깔끔한 슈트를 즐겨 입었다. 오페라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주영은 가끔 아버지와 같은 남자와 결혼하는 상상을 했다.


주영의 아버지는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주영의 아버지를 교감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경의 시선을 보냈다. 주영은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자랐다. 가끔 주영의 어머니가 내쉬는 한숨을 외면했다. 어머니의 말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아버지는 우울증이라고 불렀고, 주영은 갱년기라고 생각했다. 주영의 집은 조용했고, 단정했고, 편안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반듯하고 친절한 아버지가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에 나왔다. 지역의 어느 중학교 김 모 교감이라고 했지만, 아버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날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주영은 입을 틀어막았다.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정신없이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전화선을 뺐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주영은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어머니는 주영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대로 방에 들어갔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음 날, 주영은 처음으로 아침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갔다. 어머니는 주영이 학교에 갈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학교에 가기 싫었지만, 집에 있는 것도 싫었다.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고 보니 갈 곳이 학교밖에 없어서 학교에 갔다. 기분 탓인지 어떤지 몰라도 사람들이 모두 주영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주영은 빨리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뭔지 모를 두려움이 주영을 따라다녔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학교를 다녔다.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없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주변의 색과 맞추며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읽었던 책이 주영의 유일한 친구이자 낙이었다. 그것조차 없었다면 주영은 미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주영의 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집에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이사를 했다.


주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들어갔다. 친절하고 다정한 남자가 싫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자신의 욕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드러내는 수컷들을 증오했다. 너무 완벽한 사람이 무서웠다. 경찰이 말한 아버지의 죄목은 음란죄와 스토커였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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