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 『에크리 자크 라캉』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래야 한다. 내가 이러면 좋겠다는 타인의 욕망을 (부모님, 학교선생님, 친구)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기에 욕구와 요구를 잘 구분해야 한다. 누구의 마음에서 온 ‘욕망’인지 말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상황을 잘 헤아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자.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묻어두라지만 과거를 대입해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예를 들자면 중학교 진학 시 상고 진학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과목별 편차가 심했고, 특히 이과 과목을 힘들어하고 이해 폭이 좁았다. 공부 중심인 인문계에서 ‘들러리’ 학생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난 제 3의 선택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공고에 가서 인테리어를 배우고 싶었다. 여학생 공고진학이 드물었던 시절, 이는 부모님의 빠른 반대로 무산됐다. 나는 결국 친한 친구가 같이 인문계로 가자는 말을 듣고 결국 그렇게 했다. 친구는 우리 사이가 멀어질 거라고 말했다.
수십 년이 흘러 나는 결국 상고에 갔어야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의 결과에 대입해 보면 말이다. 나는 적성이 맞지 않는 2년제 디자인과를 휴학하며 졸업했다. 그리고 취업에 거듭 물을 먹었다. 사무 오피스에 약해, 사비로 배우느라 애썼다. 사무직 취업이 안되자, 오랫동안 디자인과 관계없는 서비스직에 몸 담았었다. 잠시 마음에 담았던 인테리어는 몇 년 전에 또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었다. 그러나 진학까지는 역시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상업 고등학교에 갔어야 했다. 이 시점에 되짚어보니 말이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선택이 쌓여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과가 나온다. 작은 예를 들었지만, 사람의 일에, 상황에, 감정에 ‘수많은 변수’가 있지 않은가? 적어도 자신의 욕망이 담긴 결정에 후회는 없지 않을까를 전제한다.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선택이므로. 자신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인지 주체가 누구인지를 항상 알고 살아야 한다. 요구인지 욕망인지 잘 구별하면서.
누구에게 끌려가다니면 결국 이렇게 된다. 내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