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 Mar 14. 2023

0원으로 사는 삶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남보다 더 있어보이고 덜 손해보는 것이 마치 '유일한 성공의 모습'인냥 외치는 사회에 이런 책은 너무 귀하다. 저자는 런던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하며 빠듯한 삶을 살다 해고를 당한다. 그리고 살인적인 집세와 물가 앞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어떻게든 돈을 버는 대신, 돈흔 한푼도 쓰지 않는 삶을 시도해보기로 '선택'한다. 이 책은 그 선택을 한 후 벌어지는 1년여간의 여정을 담은 글이다. 




저자는 0원으로 살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한다. 저자의 여정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농장에서 일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후 도시에서는 빈집에서 거주하는 스퀏팅과 멀쩡한데 버려지는 음식물을 회수해서 먹는 스킵 다이빙으로 생활을 이어나간다. 이동이 필요하면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떠나고, 레인보우 패밀리를 만나 오직 흐름에 몸을 맡긴채 여행을 떠난다. 카우치서핑같이 무료로 숙소를 제공해주는 호스트들이 호의를 받고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카우치 서핑으로 유럽을 여행할 때 만났던 많은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나에게 기꺼이 자신의 집을 내어주었고, 먹을 것을 나눴다. 물론, 나는 무전 여행을 하지는 않았으니 때로는 내가 밥을 사기도 했지만, 그것또한 온전히 나의 자유였다. 나에게 자신의 집의 일부를 내어준 사람들 중 일부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반 자본주의적인 나름의 운동을 하고 있었다. 최소한으로 소비하고, 자기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눴다. 스킵 다이빙으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더 많이 나누는 것이 자신의 것을 줄이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나는 그들의 삶의 모습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자본주의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문득 그 친구들이 궁금해진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더 많은 소비를 전제한다. 그래야 경제가 성장하고 주식이 오르니까. 이런 방식의 성장은 인간의 욕심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예를들어 패스트패션은 필요없는 옷을 단지 저렴하다는 이유로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데, 이는 엄청난 환경오염은 물론이고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개발국가의 노동력 착취를 통해 이루어진다. 비단 옷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필요 없는 것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고, 그것을 팔기 위해 욕망을 창조해내고, 사람들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일하며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고, 궁극에는 자신을 잃는다. 사실 나도 그랬다. 이 시스템에서 더 성공하고 더 많이 벌기 위해 애쓰며 일하고 스스로를 착취했다. 


우리가 더더더를 외치며 자신을 착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서이다. 사회의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더 많이 인정받고, 더 많이 사랑받지 못할 것 같다고 여겨지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그 규칙 속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애쓴다. 하지만 그렇게 올라간 그 곳에 진짜 사랑이 있을까? 


저자가 만난 히피들의 삶은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우리의 삶의 방식만큼 이상한 것은 없다. 지금 사랑하고, 지금 행복하고, 나눔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망을 확보한다는 명분하에 지금의 행복을 계속해서 미래로 유예하며 살아가니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쩌면 이미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인색해지고, 내 것을 지키기 바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래도 바뀌고 싶다. 아니 바뀌고 있다고 믿는다. 0원으로 사는 삶을 선택하지는 않겠지만, 나의 방식으로 작은 혁명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많은 문장들이 기억에 남았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았던 몇몇 문장들 


시스템은 쳇바퀴를 굴리지 않는 사람에겐 그 어떤 안전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시스템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안정'대신 '모험'을 택했다. '노동-소비'쳇바퀴를 굴리지 않고도 생존과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킬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이것이 바로 '0원살이'의 시작이었다. 



'0원살이' 여정을 이끄는 핵심 질문이 바뀌었다. '어떻게 해야 먹고살 수 있지?'에서 '어떻게 해야 먹고사는 것마저 두렵지 않을 수 있지?로.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지?'에서 '어떻게 해야 사랑이 될 수 있지?'로. 그렇게 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우주'라는 무한하고도 신비로운 진리의 세계였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이미 완벽합니다. 

'더 높은 자신'에게 의존하세요. 



푸는 많은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게 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어낸 모든 일을 그저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라 여긴다. 푸는 세상에서 가장 노력하지 않는, 애쓰지 않는 곰이지만 무슨 일이든 잘되게 하는 곰이다. 



언젠가 아나스타시아에게 그리스가 직면한 경제 위기에 관해 물었는데,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무슨 위기일까? 사람들은 경제나 돈과 관련된 위기에만 세상이 끝난 것처럼 반응하는데 사실 진짜 위기는 그게 아니잖아. 자연 파괴, 멸종, 전쟁. 이런 게 진짜 위기지. 이런 위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사람들은 지금 경제 위기에만 난리를 떨고 있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모두 상품이 된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