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자본 1-1, 상품
상품은 가치로 실현되려면 먼저 자신들을 사용가치로서 증명해야 한다. 상품에 지출된 인간노동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쓸모있는 형태로 지출되었을 때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노동이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지, 그리고 그 생산물이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지는 오직 교환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개인에 의해 관점을 부여받고 해석될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빨간약을 먹는 순간은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은 없으며'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그만의 관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아닐까?
태어날때 부터 상품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는 상품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지 못한다. 나의 세상에서는 태초에 상품이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너무 당연히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상품'이란 개념은 자본주의 이후에 완성된 개념이다. 그전에는 상품의 개념보다는 재화의 개념이 부를 나타낼 수 있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재화가 자신의 욕구 충족을 가장 우선의 목적으로 둔다면 상품은 타인의 욕구 충족을 최우선의 조건으로 놓는다. 그 결과 상품은 철저하게 인간 자신은 배제시키고 시선을 철저히 타자에게 맞춘다. '상품'은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서 교환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호의로 주고받던 것들, 공동체에서 대가없이 주고받던 것들 모두 이제는 상품으로 시장에서 거래된다. 이 시스템은 효율과 생산성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우리가 시간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소비하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을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지배했기 때문이 아닐까?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을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인간의 노동뿐 아니라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성격이나 성향, 취향조차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어 거래되는 세상이다. 이 자본주의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에 빠져서, 마치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나의 영혼까지 팔아버리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