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에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인데, 오늘 세보니 딱 4일이 지났다.
발리는 싱가폴 살던 시절에는 일년에 몇 번씩 오기도 했고, 게다가 우붓은 크리스마스 휴가로 2주를 쉴 수 있었던 전 직장 시절 매년 왔던 곳이라 그런지 오자마자 모든게 너무 익숙해서 사실 여행 왔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같은 도시를 계속 여행할 때의 장점은 적응할 시간 필요 없이 바로 적응 된다는 점, 그곳에서 일어날 상황에 대해 왠만큼은 다 예측가능 하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계속 방문한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모여있다는 뜻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곳들을 다시 방문하며 옛 추억에 빠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동시에 몇 가지 단점들도 있는데, 이미 왠만한 건 다 봤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어딜 가도 약간은 시큰둥 해진다. 특히 기념품샵이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 보는 재미가 별로 없다. 사실 이건 비단 우붓에서만 그런 건 아니고, 여행을 숱하게 하면 수많은 물건을 충동구매하고, 집에 쌓이고, 버리는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뭔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사실 잘 안든다. 내 성향이 맥시멀리스트라기 보다는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여행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내 마음에 정말 쏘옥 드는 물건을 만나는 건데 이번에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으려나?
왠만하면 뭐 안사는 나지만, 발리에 올 때마다 반드시 구매하는 아이템이 있다면 코우라는 브랜드의 비누이다. 예전에는 일년치 비누를 여기에서 사가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원래 쓰던 걸로 몇 개만 쟁였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던 샴푸 겸용 올인원 워시가 있었는데, 아주 작은 마사지샵에서 팔던 건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마사지샵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페네스타난 쪽에 있었던거 같은데 말이지... 근데 사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걸 써도 그 때만큼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좋았던 이유는 완전 올가닉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에 씻을 수 있어서 였다. 한 때는 그게 너무 좋아서 발리에 올 때마다 몇 개월 치를 쟁여놓고 떨어질 때쯤 발리 여행을 가기도 했으니, 과거의 나는 어떤 면에서는 참 어리석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기념품, 관광 명소 같은 곳들은 시큰둥 한데 우붓의 자연과 요가 수업은 여전히 너무 좋다. 어느 요가원을 다닐지 고민하다 Radiantly Alive 한달권을 끊었다. 신기하게 우붓에 오면 계속 Radiantly 에 가게 된다. 요가반도 좋긴한데, 왠지 자주 가게 되질 않고, Intuitive flow는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거기에서 요가를 하고 난 후 어딘가가 늘 아팠다. 이건 물론 요가원의 문제는 아니고, 그 때의 나의 몸의 상황의 영향이 큰데, 사람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다보니 왠지 안가게 된다. Radiantly 에 계속 가게 되는 건, 그곳에서 요가를 하면서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그 때의 그 좋은 기억들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 때는 무제한 이용권을 끊고, 거기에서 요가하면서 만나게 된 언니, 친구들과 매일 아침부터 요가하고 밥먹고, 요가하고 커피마시고, 요가하고 맥주마시고 이걸 반복했는데, 그 즐거움이 참 컸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요가들으면 몸이 부서질 것 같다...그 때의 젊음도 그립다.
근데 나는 22살 인도 여행 하던 때 리시케시에서 요가를 처음 만나서 요가를 시작했고, 요가리트릿 여행도 참 많이 하고 무려 인도에서 요가 티쳐 트레이닝도 받았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요가 실력이 거의 늘지 않았네. (또르르...) 뭐든 일상에서 꾸준히 수련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을 나의 요가 수련의 역사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요가에만 해당되는 건 아닐 꺼다. 요가는 몸으로 나타나는 거니까 좀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지만 뭐든 이벤트 성으로 반짝 하는 건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 진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상의 꾸준함이 필요하다. 요가처럼 몸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구한 에어비앤비 숙소는 모든 것이 맘에 든다. 창밖으로 멋진 정글뷰가 펼쳐지는 것도좋고, 부엌이 있어서 간단한 조리를 해 먹고 과일도 마음껏 깍아 먹을 수 있는 것도 좋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위치가 요가원에서 좀 떨어져있다는 점인데, 사실 알고 있었지만 내가 간과했던 건 우붓의 오토바이 소음이 생각보다 아주 요란하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오토바이와 자동차 소음에 이렇게 민감했나? 싶을 정도로 걸을 때마다 들리는 이 소리가 매우 괴롭다. 그렇다고 에어팟을 끼고 다니기도 그런게 인도가 좁고 때때로 도로를 걸어야 할 때도 있어서 에어팟을 끼기에는 왠지 좀 위험하게 느껴진다. 다행히 좀 더 돌아가지만 오토바이 소음이 별로 없는 몇 가지 대안 루트를 발견했다. 그런데 발바닥이 아파서 아마도 당분간은 고젝이나 그랩 바이크를 불러서 타고 다닐 것 같다.
아침은 주로 집에서 과일을 잘라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신다. 호스트가 준비해 준 인스턴트 커피를 며칠 먹다가 맛있는 커피가 먹고 싶어 오늘 우붓 커피 로스터리에 들러 원두를 사왔는데 아주 맛있다. 과일은 아침에 열리는 아침 시장에서 사온다. 파파야 1kg 에 만루피아 정도면 살 수 있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900원 정도? 요즘은 파파야가 망고나 망고스틴보다 맛있다. 레몬도 사와서 아침마나 즙을 내서 물에 타마신다. 이곳의 물은 석회가 많아서 레몬을 많이 먹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나나도 한국에서 파는 커다란 바나나보다 훨씬 맛있다. 아주 작고 껍질이 얇은 바나난데, 원래 바나나만 먹는 거 별로 안좋아 하는데, 이 바나나는 너무 맛있어서 간식으로 계속 까먹는다. 근처 오가닉 쥬스 가게에서 빵에 발라먹을 오가닉 땅콩버터도 사고, 발리부다에서 멀티 그레인 식빵도 샀는데, 땅콩버터는 아무리 다양하고 좋다는 브랜드를 먹어봐도 스키피가 짱이다... 다른건 왠만하면 오가닉/핸드메이드가 더 맛있던데, 땅콩버터는 왜 대량 생산의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어제부터 숙소에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놀러온다. 어제 계속 냐옹냐옹 울어대며 따라다니길래 마음이 쓰여서 편의점에서 고양이 사료를 사왔다. 오늘도 따라다니며 울길래 사료를 조금 줬는데 낼름 먹고 사라진다. 어제는 게속 졸졸 따라다니더니 ㅋㅋㅋ 고양이라는 생명체는 왜 그렇게 귀여운걸까? 그런데 확실히 아기 고양이라 그런지 정신 사납게 계속 움직인다. 계속 내 다리 사이를 지나다니고 한시도 가만히 못있어서 어떻게 같이 놀아줘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여행했던 것 중 먹는 데 돈을 가장 안쓰고 있다. 딱히 아끼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데, 집에서 과일이랑 빵 사먹고, 맥주 안 마시고, 가능하면 소식을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물론 실패할 때도 많다) 한끼에 만원을 넘겨 먹기가 힘들고, 하루에 밖에서 한끼 정도만 사먹게 된다. 집 근처 로컬 식당에 제일 자주 가는데 맛있고, 값도 매우 저렴하다. 그리고 이번에 또 자주 안하게 되는 건 마사지. 예전에는 1일 1마사지를 추구(?) 할 정도로 마사지를 좋아했. 데이스파같은 것도 많이 다니고 유명하다는 스파도 많이 다녔는데 이번에는 희안하게 마사지가 안땡긴다. (하지만 한 번 받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ㅋㅋㅋ) 내일은 첫 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친구가 추천해 준 마사지샵에 친구가 추천하는 마사지사로 예약을 했는데 오랜만에 발리에서 받는 마사지라 그런지 기대 된다.
우붓에서 사실 제일 많이 하고 싶은 건 생각하는 거다. 멍때리고 생각하고, 사유하고, 고민하고 그런 시간들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 우붓도 이미 익숙한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생경함이 느껴지는 이 곳에서는 익숙한 곳에서는 막혀서 나오지 않던 실마리가 번뜩 떠오를 가능성이 크니까. (라고 믿고 싶다.) 다행히 주말 동안 막혀있던 원고를 마무리 해서 책의 초안을 넘겼고, 이번주에는 회사 이름으로 출판할 책의 초안 작업을 추가로 할 예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거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나의 Why, 존재이유를 찾아야 한다.
24년은 여러모로 시작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