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의 모습을 살아보기로 했다.
언제부턴가 도시의 삶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바쁘게 사느라 자신의 삶을 돌볼 시간을 갖지 못한 채 편한 도시의 인프라에 생명을 의탁하듯 살아가고,
그것이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는 게 왠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사니까, 그 속에서 내 리듬을 찾고 살면 되지만,
창문을 열면 보이는 옆 아파트의 모습, 땅에 발 붙이지 못하고 허공에 떠서 살아가는 느낌,
따닥따닥 붙어있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 속에 안락하게 갇혀서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삶의 모습을 살아보고 싶었다.
사실, 나는 벌레도 무서워하고, 어두운 밤도 무서워하고, 아주 잘 정제된 정원과 같은 자연은 사랑하지만,
인간 손이 닿지 않은 야생적인 자연은 무서워하는 지극히 도시적 인간으로 길러져 살아왔는데,
더 늦기 전에 나의 다른 가능성을 탐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전원 생활에 잘 맞을 것 같은 점들은,
배달음식을 거의 안시켜 먹고, 장도 직접 가서 보는 걸 선호한다는 것.
사먹는 음식보다 직접 해먹는 음식을 좋아하고, 거의 매일 집밥을 해 먹는다는 것.
작년에 텃밭을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것.
집에서 차마시고 커피마시는 걸 좋아해서 카페는 친구 약속이 아니면 거의 가지 않는다는 것.
밖에서 노는 것 보다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는 점.
다행히 내가 가게 된 집은 완전 시골에 있는 야생의 집은 아니고,
용인에 있는 전원주택이다.
앞에는 개울도 흐르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독립적인 집이지만,
개울 맞은 편으로 전원주택이 꽤 있어서 완전 동떨어진 느낌은 아니다.
집 옆쪽으로 텃밭도 있어서 텃밭을 키울 수도 있고, 개울에 연결된 집은 우리집밖에 없어서
단독 개울처럼 프라이빗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전원주택을 알아보며 단지형 주택 말고 독립적으로 지어진 집을 찾으면서도
우리가 찾는 집이 진짜 있을까? 했는데, 마법처럼 이 집이 딱 나타나줬다.
오래된 집이지만, 건축가가 아버지를 위해 정성스레 지은 집이고
가족 별장으로 오래 사용했던 집이라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다.
계약을 하며 들으니 지하수를 400미터나 파서 물맛도 아주 좋고,
벽도 30센티나 될 정도로 꼼꼼하게 시공된 집이라 단열도 잘 될 것 같다.
그래서 에어콘설치가 안되는데, 지금까지 더운줄 모르고 사셨다고 하고 더위를 많이 안타니 이건 괜찮을 것 같다.
한가지 걱정은 집이 우리의 필요보다 훨씬 크고, 심야 전기 난방이라 난방비가 좀 걱정되는 점인데,
거실에 커다란 벽난로도 있고, 겨울에는 난방비 폭탄을 맞을 각오를 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ㅋㅋㅋ
주말에는 이케아에 들러서 가구도 구경하고, 가구 배치를 어떻게 할지도 고민했다.
집이 갑자기 넓어지니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사실 전혀 필요 없는 것들도 공간을 채워야 하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나도 짝궁도 물건을 많이 들이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몇 가지 사고, 나머지는 없는대로 일단 살아보기로 한다.
늘 뭔가를 채운 곳에서만 살았는데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공간에서 사는 것을 경험해 보기로 한다.
무엇보다 신나는 건 텃밭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5월에 이사 갈 예정이니, 씨앗을 심는 건 살짝 늦을 것 같고, 처음이니 일단은 모종으로 심고,
작년에 씨를 받은 콩 종류는 좀 늦게 심어도 될 듯 하니, 씨앗으로 심어보려 한다.
막상 살아보면 불편한 것도 많고, 귀찮은 것도 많겠지만,
요 몇년간 꿈에 그리던 전원 생활과 텃밭 생활을 하게 된다니 벌써 설레인다.
서울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경기 남부인 짝꿍 직장에서는 오히려 가까워져서
지금처럼 친구들도 종종 만나고, 서울 나들이도 큰 불편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좋다.
(물론 자주 갈 것 같지는 않지만. ㅋㅋㅋ)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뭐, 내 로망과 다르더라도 괜찮다.
살면서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삶의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기대되는 전원주택 라이프.
커밍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