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이후에 찾아온 어떻게에 대한 질문.
한 때 '왜'라는 질문에 심하게 집착했던 적이 있다. 인간은 '왜' 태어나서 '왜' 허무하게 죽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런데 이 '왜'로 시작되는 질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무도 그 답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수 많은 종교와 철학이 이 질문에 답하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가설로 밖에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나한테 이미 주어진, 혹은 나의 성향 이나 가치관과 가장 잘 들어맞는 하나의 가설을 마치 진실인냥 믿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 질문을 가지고 있을때의 나는 참 버거웠다. 마치 아무런 목적 없이 만들어진 쓸모없는 물건이 된 기분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이미 존재해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데, 이 존재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니 늘 답답하고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나는 이제 더이상 '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가설로만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의 진위여부를 절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현실인식과 함께 모든 것에 명확한 답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또한 주입받은 나의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여기에 태어났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다. 그 이전과 그 이후는 그저 추측할 수 있을 뿐이고,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왜'에 대한 질문을 넘어선 지금. 나는 이제 '어떻게'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이 '어떻게'에 대한 물음의 답은 '왜'에 대한 답보다 훨씬 더 명료하다. 하지만 이 답은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들과 함께 등장해서 어떤 면에서는 나를 좀 더 혼란스럽고 괴롭게 한다.
이론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생각해 보면,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가능한 적게 소유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 가능한 많은 삶의 경험을 해보고 싶다.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하고 싶다. 사람들과 사회의 기준과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나의 기준을 따르며 살고 싶다.
그리고..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을 반추해보면, 나는
빨리 집을 사고 싶다. 새롭고 신기한게 나오면 일단 사보고 싶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이해가 안되서 분통이 터지고 답답함을 느낀다. 일 끝나면 기진맥진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이 겁이난다. 내가 편하고 즐겁고 안락한게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한마디로 돈은 많지만 적게 소유하며 간소하게 살고 싶고, 자유롭고 욕심없지만 회사에서 일 잘한다고 인정받으며 일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만 그 모두가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었으면 좋겠고,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전에 내가 먼저 성공하고 싶다.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당하거나 남들에게 평가받고 싶지는 않다.
아주 여러가지 면에서 나는 하나의 큰 모순 덩어리로 존재한다. 하나의 큰 욕망이 있는데 그 욕망에 대한 커다란 저항이 있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계속해서 갈팡질팡하며 줄다리기를 한다. 때로는 왜 나는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냥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정답인줄 알고 좀 더 성공하는 삶을 쫓아 앞만보고 살거나, 도닦는 스님이나 수행자가 되어서 좀 더 영적인 것들을 탐구하며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그렇게 살게끔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기에 지금 여기에서 그 답을 끊임없이 찾아 갈 수 밖에는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계속해서 진행중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공간에 어떻게를 찾아가는 나의 삶의 정제되지 않은 기록을 옮겨볼 생각이다. 무언가를 적는 행위가 나의 머릿속을 좀 더 명료하게 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길을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