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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Apr 13. 2018

어느덧 삼십대 중반

긴 터널 같았던 이십대를 지나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 되었다. 이십대에 만났던 삼십대의 사람들 대부분은 은 엄청난 사회인의 포스를 풍기면서 결혼, 회사생활, 재테크, 가족 등등등에 대한 엄청난 조언들을 내게 퍼붓어 주었다. 그 때는 삼십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 다양한 것들에 대해 모두 알게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삼십대가 된 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못한다. 여전히 나는 회사생활이 어렵고, 재테크는 한 번도 제대로 해본적이 없고, 결혼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다. 


그래도 긴 터널같은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에 이르니 좀 더 편안해지는 부분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십대때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가 중요했는데, 이제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아닌 이상, 남들이 뭐라고 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많은 경우 그 노력이 잘 통하는 편이다. 독립을 하니 부모님의 통제에서도 좀 더 자유로워져서 이제 더이상 집에 늦게 들어간다던지 외박을 한다던지 하는 사소한 일들로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예전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있었는데, 이제는 혼자있는 시간이 더 즐겁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고 자연스례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되니 무엇을 사든, 입든, 어디를 가든, 좀 더 자유롭고 당당하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런 편안함은 나태와 안락함의 추구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십대 때에는 망해도 상관없고 뭐든 내가 재미있는 걸 하는게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새로운 걸 시도했다가 실패할까 두렵다. 마음의 다양한 변덕을 경험하다 보니 지금 내 결단이 한 달 후, 일 년 후, 십 년 후에도 같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뭐든 좀 더 신중해지고 그러다보니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삶을 흘려보내고 그 과정에서 처음의 마음또한 짜게 식어간다. 이런 내가 싫어서 뭔가 결단을 내리고 싶다가도 실패와 변덕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일피일 미루며 결국 같은 삶을 하루이틀 또 살아가며 타협해버린다. 이렇게 살다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매일 불평하면서도 자기 삶을 전혀 바꾸지 않으며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눈먼 사람들 처럼되지는 않을까 두려워진다. 


나이는 나에게 일정량의 지혜와 나일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나태함과 두려움도 함께 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끊임없이 지혜로워 지면서도 실패 해도 괜찮을 용기를 얻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삶을 찾아오는 불확실성과 후회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도 자유로워 지는 것. 


쉽지 않겠지만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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