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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Feb 06. 2022

방콕 리모트 워크 2주간의 기록

지속 가능한 리모트 워크, 가능할까? 

방콕과 푸켓에서 약 3주 반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열흘 정도는 휴가와 설 연휴를 모아 푸켓에서 휴가를 즐겼고, 2주의 시간은 방콕에서 리모트로 근무를 했다.


태국은 남자친구가 사는 나라이기도 하고, 코로나로 취소되기는 했지만 이주까지 생각했던 꼭 살고 싶었던 나라이다. 한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 사업 때문에 당분간 태국에서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2주간 리모트 워크를 하며 시스템을 좀 더 잘 만들면 어쩌면 좀 더 오랜 시간 태국에서 리모트 워크로 일과 관계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리해 보는 방콕 리모트 워크 2주간의 기록들



방콕 리모트 워크, 어디에서 일했나?


1. 요드네 오피스와 집


가장 일하기 좋았던 곳은 역시나 요드네 오피스였는데 그 이유는 (1) 편안한 책상과 의자 (2) 빠른 인터넷 (3) 적절한 온도 (4) 줌 미팅이 가능한 환경인데, 바꿔 생각해 보면 그 어떤 곳이든 이 네 가지 요건만 갖추고 있다면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은근 이 네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을 찾는 게 쉽지 않다.)


다음으로 많이 일한 곳은 요드네 집인데, 아무래도 제일 불편했다. 이유는 불편한 책상과 의자. 요드네 집 가구는 다 빈티지 가구인데, 책상도 빈티지 스타일의 요상하게 생긴 책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양은 예쁜데, 일하기에는 영 불편하고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의자도 별로 편하지 않아서 계속해서 신경 쓰이고 허리와 목에 긴장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처음 며칠 집에서 일하고 나중에는 웬만하면 밖에 나가서 일하는 걸로 노선을 바꿨다.

일하기 좋았던 요드네 오피스 


2. 카페 (especially 스타벅스!)

방콕에는 카페가 많은데 일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카페는 생각보다는 많이 없다. 그래도 좋은 건 스타벅스가 어디에나 널려 있다는 점. 스타벅스는 놀랍게도 어느 나라에 가든 비슷한 퀄리티의 규격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방콕에도 콘센트 + 적당한 맛의 커피 + 빠른 인터넷 삼 종 세트를 제공해서 꽤 자주 가서 일했다.

이 카페에는 콘센트가 없었다... 


3. 코워킹 스페이스, 코워킹 카페

사실, 방콕에서 코워킹을 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공간은 후바 였다. 코워킹 스페이스의 거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후바는 사톤과 수쿰빗에 각각 지점이 하나씩 있는데 이번에 확인해 보니 두 군데 모두 문을 닫았다. ㅠㅠ 추정하건대 외국인 비중이 많은 후바는 코로나에도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공간 중 하나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후바는 패스. 그 외에도 로컬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꽤 있었는데 딱히 마음에 가는 곳은 없어서 따로 코워킹 스페이스에 등록하지는 않았다. 위워크도 있긴 한데 2주 있을 예정이기도 하고, 왠지 끌리지 않았다. 대신 코워킹 + 카페를 같이 하는 곳에서도 하루 일을 해봤는데, 카페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의자도 불편하고 책상도 불편했다. 그 이후로 카페와 코워킹을 겸하는 공간은 찾지 않게 되더라...


코워킹 + 카페인데 좌석이 너무 불편했다. 


리모트 워크, 앞으로 이렇게 해야지!

2주라는 시간이 너무 애매했고 내 공간 없이 요드네 집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공간과 루틴을 최적화 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다시 방콕에 와서 일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겠다는 방향성은 잡을 수 있었다.



1. 리모트 워크일수록 나만의 베이스캠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다음에 방콕에서 리모트 워크를 한다면 무조건 콘도를 장기 임대하려고 한다. 콘도의 조건은 (1) 빠른 인터넷 (2) 일을 위한 책상 + 의자가 갖춰진 공간이 있을 것 (3) 운동을 위한 수영장과 헬스클럽이 있을 것 (4) BTS 역에서 도보 10분 내외일 것. 사톤이나 수쿰빗같은 곳에 집을 구하려면 월 100만 원은 훌쩍 넘어가겠지만 조금 외곽에 숙소를 구한다면 위 조건을 만족한 숙소를 50~70만 원 선이면 구할 수 있다.


카페나 코워킹 스페이스를 다양하게 탐방하는 것도 좋지만 리모트 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정성의 확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리모트 워크 자체가 나의 안전지대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 들어온 건데, 그 새로운 환경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야 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안전 기지를 확실하게 확보해서 언제든 편하게 일하고 잠자고 휴식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잘 확보하는 것이 리모트 워크의 가장 기본이 될 것이다.



2.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나만의 '영감 스팟'을 2-3군데 정도 확보한다.


새로운 곳에 왔는데 매일 집에만 틀어박혀 일을 한다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영감 스팟들을 확보해서 새로운 리프레시가 필요할 때 '깜짝 오피스'로 사용한다.


나의 영감 스팟 중 하나는 방콕 TCDC라는 디자인 센터, 그리고 센트럴 앰버시에 있는 Open House. 이곳에 가면 주위가 환기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이 뽕뽕 들어온다. 주말에 방문했던 곳들 중 좋았던 곳들을 찝어놓고 영감 스팟으로 사용하는 것도 방법!



3. 하루의 루틴을 확보한다.

리모트 워크에서 정말 중요한 건 루틴의 확보인 것 같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쉬는 루틴을 확보하지 못하면 오히려 빨리 지치고 더 오랜 기간 비효울적으로 일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특히 내가 일했던 방콕은 한국보다 시차가 2시간 느리기 때문에 한국에서 10시에 시작하는 오피스 아워를 맞추기 위해선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일이 끝나야 하는 시간은 맞춰서 끝내기가 어렵다는 것. 방콕 시간으로 저녁 9-10시 정도까지 일한 날이 많았는데, 한국시간으로 바꿔 계산해 보면 밤 11시-자정까지 일한 셈. 또 리모트 워크로 일을 하고 있으니 왠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오버해서 일을 하게 되는 것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일만 하면 확실히 컨디션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는 것.


일을 시작하는 시간과 끝맺는 시간, 휴식시간을 잘 확보하는 것이 리모트 워크에는 더더욱 중요하다.




리모트 워크, 무엇이 좋았나?


1.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살 수 있다는 것


너무나 오랫동안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에 따라 장소를 움직이며 살아왔다. 농경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사회를 거치면서는 일자리가 몰려있는 도시가 급격하게 팽창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일자리에 맞춰서 결정해야 할까? 내가 원하는 환경을 가진 곳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리모트로 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오래전부터 동남아에 살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태국 혹은 싱가포르. 그래서 2012년에 싱가포르에 일하기 위해 무작정 떠나기도 했고 내가 원하던 곳에 취업을 했지만 회사가 한국 지사를 만들면서 선택권 없이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야만 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사실 나쁘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누구 하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왠지 그냥 한국에 있으면 느껴지는 그 답답함이 있다. 내가 역마살을 타고났다고 하는데, 어쩌면 새로운 환경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나의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내가 정말 피하고 싶은 건 한국의 가혹한 겨울. 나는 정말 심각하게 추위에 약한 사람인데 (이번에 푸껫에서도 아침에는 추워서 수영을 못했다...) 한국의 겨울은 나에게는 정말 너무 가혹하다.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느껴지는 추위와 겨울의 차가운 에너지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서 살고 싶다.


이런 바다 보면서 사는 것 안될까요? 

2.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가진, 특권


나는 리모트 워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조금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100년 후에는 매트리스처럼 우리 모두가 가상 공간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 우리 조상들 중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반경 1000km 이상 여행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 사람은 아주아주 극 소수였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딱 이 정도의 과학이 발전한 상황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삶의 방식이 바로 리모트 워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런 삶의 방식으로 살아보는 실험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게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3. 지긋지긋 롱디 굿바이


어떻게 보면 지금 내가 리모트 워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겠다. 벌써 요드와도 4년차 롱디에 접어든다. 코로나라는 최악의 변수에서도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지속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언제까지 이런 관계가 지속 가능할까?라는 회의가 들 때도 많다.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함께 보내는 시간인데, 우리 커플의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아주 한정적이고, 또 조금은 요상하다. 아주 긴 롱디의 시간이 있고 짧은 만남의 시간이 있는데, 이 만남의 시간에는 거의 24시간을 붙어 있는다. 그러다 또다시 길게 떨어지는 롱디의 시간이 이어지고...


처음에는 사업이 좀 안정되면 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사업이 안정될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면 새로운 일들은 계속해서 벌어지기 마련이고, 그게 사업의 본질이니까. 그럼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 현재의 관계를 희생하면서 일에만 몰두한 채 살아간다면 사업이 성공한다고 해도 나는 진짜 행복할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이 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 사람이 중요한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일 텐데 요드와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지속하는 게 맞는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요즘이다. 리모트 워크를 하면 아무래도 요드와도 좀 더 구체적으로 관계를 정립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니까 리모트 워크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리모트 워크, 장점만 있는 건 아니라고..


물론 리모트 워크에는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을 거다. 일단 아무래도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일상적 의사소통의 아쉬움이 있을 테고, 팀의 소속감을 만드는 것이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부분들에 있어서 대면으로 진행하는 것보다는 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특히나 리모트 워크에 대해서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에는 더더욱. 회사 내에 리모트 워크가 가능한 직군과 대면 근무를 해야만 하는 직군 간에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리모트 워크를 처음부터 도입해서 그 어느 테크 회사보다 더 멋지게 성장한 워드프레소의 사례, 코로나 때문에 2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많은 실리콘 밸리 기반의 테크 회사들의 케이스를 보면, 우리 회사도 한 발자국 빠르게 조금 더 실질적으로 리모트 워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도입하고 적용해 볼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우리 회사는 가치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보다는 리모트 워크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 조금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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