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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May 17. 2022

일을 싫어해도 괜찮은 걸까?

밑미 회고 클럽 4월 회고!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회고를 해본다. 

오늘 회고의 주제는 일인데, 아무래도 회고를 핑계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일 회고'는 사실 제일 손이 안가는 회고의 영역이다. 왜냐면, 나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일이 싫다고 말할 수 있게 된지는 진짜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꽤 오랫동안 나는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야! 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일잘러의 페르소나'를 쓰고 살았으니까. 


사회에서 일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인정받는다. 운이 좋으면 그에 준하는 보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일을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적고, 때때로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일을 싫어한다는 것은 게으름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성장 마인드가 없는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스타트업 세계로 오면 그러한 평가는 더욱 더 강렬해진다. 스타트업과 일을 싫어하는 인간이란 결코 공생할 수 없으니까. 


스타트업에 다니는 것도 모자라 스타트업을 창업까지 한 내가 사실은 일을 실어한다니. 이건 정말 받아들여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난 꽤나 오랫동안 내가 일을 싫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일을 좋아해보려고 엄청 노력하기도 했다. 일을 싫어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존재를 일에서 찾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그 일의 가치관이 나와 잘 맞는다면 그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고 믿으며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은 나의 존재를 증명해준 가장 큰 요소 였는데, 알고보니 나는 일을 싫어하는 인간이었다니, 이건 정말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여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왜 일이 싫은 것인가? 사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일 자체가 싫다기 보다는 일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의 어떤 속성들이 싫은 것에 가깝다. 실제로도 어떤 일들은 너무 신나고 재미있게 할 때가 많으니까. 


내가 싫어하는 일의 속성은 무엇인가? 가장 큰 것은 구속된다는 것과 나의 가치를 온전히 지키기 어렵다는 것. 요즘에는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일을 한다는 것은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것을 뜻한다. 해야하는 의무가 있고, 대드라인이 있고 절차가 있고 목표가 있다. 일을 되게 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따라야 하는 어떤 규칙이 있고, 방법이 있다. 이 규칙과 방법이 나의 가치관과 잘 맞을 때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지만 내가 믿지 않는 것을 해야 할 때는 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게 커지는데, 이게 좀 다른사람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다. 사실 조직이 추구하는 지향과 개인이 추구하는 지향이 100% 일치할 수는 없고 일을 하다보면 때로는 타협해야 하는 것이 생기는데, 나는 이게 너무너무 힘들다. 


반복적인 것을 생각보다 더 끔찍하게 싫어하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내가 일을 싫어하는 것과 연결된다. 일을 한다는 것은 비단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 전 과정이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언가를 시작하고 만들어 내는 과정은 즐거운데, 이걸 유지보수 하는 작업은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휴, 쓰다보니 한 편으로는 일을 싫어하는데 이렇게 구구절절 이유까지 써야해? 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는 일이 너무 좋아요." 라고 하면 끝날 일인데, 나는 일이 싫다는 이유로 이렇게 구구절절 내가 일을 싫어하는 이유와 내가 싫어하는 일의 속성까지 쓰고 있다니, 생각해보니 나는 일이 싫다고 말하긴 하지만 아직도 일을 좋아해야 하는 것만이 정상이고 일을 싫어하는 나는 어딘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일이 싫다. 일은 나를 구속한다. 구속받는 것이 싫고, 일을 좋아하는 것만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이 세상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맞추고 싶지 않다. 일을 해야만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의 시선과 기준에서 벗어나고 싶다. 




일이 싫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24/7 마냥 놀고만 싶은 건 아니다. 사실 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한다. 단 그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이어야 한다는 아주 높은 허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은 너무 이기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산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까 작게는 우리 회사가 어떻게 돌아갈까를 생각해보면 답이 안나오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나의 이런 마음이 너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맘 편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왜 나는 이렇게 남을 배려한다고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하나도 배려하지 못하는 건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늘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 친절인데, 정작 나는 나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고 배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달까? 


공부하고 배우고 글쓰고 만들어내고 이런 작업들은 계속해서 하고 싶다. 약간 조선시대 관직에 진출하지 않은 선비같은 느낌이랄까?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하며 글쓰고, 좋아하는 벗들과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큰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런 삶.


나는 그런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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