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 Nov 24. 2022

혼돈과 허무의 끝자락에서

삶이란 파도에 내던져졌지만 결국 우리는 찾아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기 - 프롤로그 


인간은 삶이란 파도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하다못해 로봇청소기를 사도 사용법이 있는데, 인간은 삶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 사용법은커녕 존재의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태어나버렸다. 누군가 스타트업을 경영한다는 건 비행기를 조립하는 동시에 운항해 나가는 것이라 묘사했는데, 우리 삶이야말로 그런 것이 아닐까? 일단 태어났으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와중에 삶의 목적과 의미까지 찾아내야 하는 여정.


다행히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이런 고민들을 철학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잘 전승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렇게 전승되는 지식의 양 또한 너무나 방대해서 우리는 전체 메뉴를 보지도 못한 채 국적이나 가족같이 타고난 환경과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나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어 친해진 친구와의 대화와 같이 우연에 의해 자신에게 발견된 일부의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초기 가치관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젋었을 적 형성된 가치관은 실제 삶을 살아가며 실전 테스트를 통해 조정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지난 몇 년간 내가 통과한 시간이 바로 이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나에게 이 과정은 꽤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우선 기존에 믿던 가치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자기 부정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자본주의 사회가 주입하는 신념에 깊게 길들여진 인간은 성취에 의해 자신을 평가하고 존재가치를 입증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이러한 자기 부정은 나 자신의 존재가치는 물론이고 존재의 이유를 희미하게 만들어 공허함을 가져다 준다. 나는 꽤 오랜 시간 허무주의에 시달린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허무함의 뒤에는 혼돈이 도사리고 있다. 기존의 가치는 전복되었지만 새롭게 나의 삶을 지탱할 가치는 아직 정립되기 전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범람 속에서 나만의 답을 찾으려 하지만, 맞춤 수트처럼 나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철학과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거다!'라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찾으면 그에 반하는 생각이 따라오고, 그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머릿속의 정반합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혼돈 그 자체가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며,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또 다른 허무주의에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몇 년간의 고민과 방황의 끝에서 이제는 나만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 어느 정도 정립해가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이제는 비로소 내가 했던 고민들과 사유들, 그것에 영향을 준 수많은 대화와 이야기들, 책과 영화,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방황과 고민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사유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혼돈과 허무는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결국 나는 그리고 우리는 찾아낼 것이다. 삶을 살아내는 방법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