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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Nov 28. 2022

두려움에서 용기로 옮겨가기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순 없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스코트 니어링-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은 왜 어려울까? 

1.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구나 이런 고민을 안고 삶을 살아가고, 남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언어가 생겨난 사람들은 그것을 이론으로 만들거나 책으로 내기도 한다. 물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 신념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문제는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본성은 탐진치에 흔들리게끔 되어있으니,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옳다고 생각하는 확고한 신념을 만들어도, 끊임없이 탐진치에 끄달린다. 


붓다가 탐진치에서 벗어나 팔정도를 추구하면 해탈에 이른다 하였으니, 신념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신념이 바른 것이라는 전제하에) 해탈을 위한 수행이라고 보아도 맞지 않을까?


2.  머리가 앞서나가서 그럴듯한 신념을 만들어도 마음이 만들어 내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말만 하고 마는 그저그런 인간이 되어버린다. 차라리 두려움의 주파수에 맞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머리는 저기 위에 있는 높은 주파수를 추구하면서, 마음의 두려움을 하나도 벗어버리지 못하면 언행이 일치되지 않은 아주 부조리한 인간으로 존재해버리게 된다. 



합리화라는 적 

3. 그래서 우리는 너무 쉽게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나의 신념을 지키며 삶을 온전하게 사는 것 대신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자극적인 것들에 끄달리면서,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삶이라 이야기하며 스스로 합리화한다. 


정신적인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산 아파트와 주식이 더 많이 올라서 더 많이 축적할 수 있기를 욕망하고, 인간은 모두 가치있는 존재라 이야기하지만, 효율성이 낮고 일머리가 부족한 사람은 너무 쉽게 쓸모없는 사람이라 일컫는다. 휴식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휴식이 부족할 정도로 과로를 하며 스스로를 혹사시킨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4. 나 역시 오랜시간 그렇게 살아왔다. 나의 몸과 마음에 충분한 시간을 주고, 일상의 여유를 찾는 대신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일을 끝내버리는 것이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생각하며 끊임없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매였다. 삶에서 안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많이 축적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생각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가 찾아낸 차악의 시스템이니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부대꼈는데 이런 느낌을 잊기 위해서 다른 것들로 주의를 돌리며 더 많은 자극을 찾았고 때로는 더 좋은 것들을 누리고 더 많은 것들을 성취한다면 이 모든 부조화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딜레마 

5. 하지만 이런 정신적 위안과 합리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살지 못하는 삶이 계속해서 누적되었다. 나에게 불편한 옷을 입고,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내가 부대끼는 것들을 하면서 사는 것 말고는 정말 방법이 없는가? 


자본주의는 전 지구상의 인류와 가축을 위해 넘칠만큼의 식량을 생산해내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노동자도 매일 옷을 바꿔입을 수 있을 수 있는 의복을 생산하고, 최첨단 냉난방시스템을 통해 누구든지 안락한 집에서 살 수 있게끔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물론 이 이야기는 대부분의 저개발국가의 국민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이긴하다.) 그와 동시에 그 모든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욕망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끊임없이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게끔 인간의 정신을 무력화시키는데, 결국 나 역시 그렇게 훈련된 인간으로 살면서 이 삶을 마무리 할 것인가?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용기의 주파수로 

6. 낮은 주파수의 집단 무의식이 만들어 내는 두려움이라는 주파수를 벗어나서, 용기의 주파수로 올라설 때이다.  


7. 내가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들로 시간을 보내고, 탐진치에 끄달리지 않게끔 수행을 지속하고, 우주에서 받은 만큼 돌려주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남들의 눈에 그럴듯해 보인다고, 혹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사회적 허례허식에 응답하기 위해 나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들을 하면서 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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