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 Nov 29. 2022

나와 월든, 소로우에게서 듣는 조언

다시 월든을 꺼내 든다. 이번에 월든을 읽으니, 내가 고민하던 것들에 대해 너무나 명쾌하게 소로우가 답을 해 놓은 부분들이 많아서 매 장을 넘길 때마다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긋는다. 다시 읽는 월든이 더 좋은 까닭은 요 몇 년간 고민해서 얻은 나만의 답에 대한 확신을 소로우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민들을 가지고 답을 찾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월든을 읽었을 때에도 감동이 있었지만, 그 고민들을 움켜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나만의 사유를 어느 정도 정립한 뒤 읽는 월든은 훨씬 더 감동적이다. 마치 몇백년 후에 태어날 어떤 사람이 이런 고민을 할 테니까 미리 힌트를 좀 줘야지 라고 준비해 둔 것처럼, 나의 불완전한 사유가 그의 사유를 만나 한층 더 단단해지고, 명료해진다. 



그는, 사회의 통념을 따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맞다. 사실 소로우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철저히 개썅마이웨이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통념이나 사람들의 충고나 조언, 연장자의 조언이 자신의 신념과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철저히 기존의 통념을 무시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는데, 그가 약간 시니컬한 태도로 사람들의 통념을 까는(?) 부분을 읽고 있으면 속이 시원하다. 


박애주의자들은 너무나 자주 자기가 벗어던졌던 슬픔에 대한 추억으로 인류를 감싸고 그것을 연민의 감정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절망이 아닌 용기를, 질병이 아닌 건강과 편안함을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며, 절망과 질병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소로우가 더 좋은 이유는 그가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하려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삶을 하나의 실험으로 보고 철저하게 실험하고 검증하며 자신의 신념을 만들어갔다. 그는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에 있어서도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는데, 아래의 문장에서 영혼없이 일하는 것에 대한 그의 입장을 볼 수 있다. 


한때 나는 학교 경영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비용이 수입과 맞먹거나 초과하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교육자다운 사고와 신념을 가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업에 맞는 복장을 하고 준비를 해야 했으며 그 외에도 시간을 많이 빼앗겼던 것이다. 또한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서가 아니고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므로 그것부터가 실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한 때 성공적인 연필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이 사업을 접는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사업을 하면서 느꼈을 감정들에 대해 깊은 공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성공적으로 자신의 영혼과 도덕성을 파탄시키지 않고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로우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나 역시 소로우와 비슷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업은 나의 영혼을 파괴시킨다. 


나는 또 사업도 해보았다. 그러나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10년가량 걸리는 데다 그때즘이면 나는 도덕적으로 파탄의 길을 걷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소위 사업이란 것에 성공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게까지 되었다. 


자신에 삶에 대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하며 살았던 그는, 어떻게 삶을 살고자 했을까? 아래 문장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직업을 선택하는 데 좀 더 신중을 기한다면 아마 누구나 본질적으로는 연구가나 관찰가가 되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성과 운명에 대해서는 누구나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자손들을 위해 재산을 모으고, 가문이나 국가를 창설하고 명성까지 얻는다고해도 우리는 결국에는 죽게 되어있다. 그러나 진리를 다루면 우리는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되며 변화나 재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다.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푸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그리스식이나 고딕양식의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결국 계속해서 돌아오게 되는 답은 '생각하는 사람, 움직이는 사람,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간소한 노동으로 일상을 꾸리고, 좋은 글을 읽고 사색을 하며 나와 세상에 대해 탐구하고, 명상을 하며 나 자신을 초월하는 삶.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이 아닐까라는 것이 요즘 나의 결론인데, 월든에서 이 구절을 만나 매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때면 많은 사람들은 일하는 것의 신성함과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소로우는 그런 사람들에게 전달할 말도 준비해두었다.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일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같이 보인다. 또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쁜 길에 빠지니까 일에 몰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현재로써는 할 말이 없다. 


내 주변에도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 역시 현재로서는 할 말이 없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자의 영혼이 자신에게 하는 속삭임이 다를터이니, 다른 영혼의 속삭임을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내 영혼은 나에게 단순하게, 소박하게, 자연과 가까이 살라 이야기하니 그것을 따를 수 밖에는 없다. 


소로우는 자신의 삶이 사회의 인습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진실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알고 있을 것 같다. 왜냐면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을 때 불멸을 삶을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두려움에서 용기로 옮겨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