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학급 '알잘딱깔센' 되기
어떤 조직에서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인간관계' 두 가지이다. 유치원에서 유아특수교사로서 일하면서 느낀 건, 다른 조직보다 이 '인간관계'가 결국 '일'에 포함되는 정도의 중요도를 가진다는 점이다. 아마 공무원 조직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일을 잘한다고 보수가 더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하는 건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은 특히 저경력인 유아특수교사가 '일'을 잘 해내기 위해 필요한 마인드셋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많은 유치원의 일반 교사들이나 관리자들은 특수교사와 그 반의 특수 유아들을 '다소 귀찮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는 티내지 않아도(티내면 안 되지!), 귀찮은 건 사실이다. 특수 유아이기 때문에 신경써 주어야 하는 건 더 많은데, 기조에 따라 완전통합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아특수교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건, '내가 여기에 필요한 사람입니다'라는 인상을 주는 거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인상을 줄 수 있을까?
우선 유아특수교사부터가 통합학급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특수 유아들은 이미 통합학급에서 '방해가 되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유아특수교사가 그걸 상쇄하는 정도의 필요도를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통합학급에서 환영받기 시작할 것이다.
유아들은 발달 특성상 자조 기술 수행을 위해 성인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교실 곳곳에 손이 가는 잡다한 일이 많다. 아침 등원 때 유아들의 물건 정리 도와주기, 식사 전 교실 책상 닦기, 식사 후 유아들 잔반 처리 도와주기, 일반 유아들 간의 아주 사소한 갈등 해결(큰 갈등은 담임 교사가 해결해야 한다), 화장실 다녀오기 등 매 순간마다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이 모든 걸 통합학급 교사 혼자서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같은 교실에 있으면서, 유아특수교사인 내가 그 일을 나누어 하면 아주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아침 등원 때 일반 유아들의 가방 정리도 함께 도와주는 것, 특수 유아가 놀이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갈등 해결을 도와주는 것, 밥을 조금 일찍 먹고 일반 유아들의 잔반 처리를 도와주는 것, 전이 시간에 특수 유아가 화장실 다녀오는 것을 지도하면서 일반 유아들도 같이 봐 주는 것... 이 모든 일들은 나를 요즘 말로 소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는(알잘딱깔센)' 유아특수교사라고 느끼게 할 것이다. 이걸 몇 주, 아니 며칠이라도 반복하면 통합학급 교사와 그 반의 유아들은 나를 '통합학급에 필요한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
이건 1번, 3번과 연결되는 맥락이다. 특수 유아를 포함한 통합학급의 모든 유아들을 특수학급으로 데리고 와서 내가 수업을 하자. 인원이 많아 모두 데려오기가 어렵다면, 절반씩 나누어 데리고 오자. 이건 아주 많은 장점이 있다.
첫째, 특수교사가 편안함을 느낀다. 특수학급은 내 '홈그라운드'이니, 내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는 안정감이 있다. 또 통합학급에만 있으면 내 반을 돌볼 시간을 따로 내야 하지만, 특수학급으로 데리고 오면 내가 내 반을 돌보는 데도 신경쓸 수 있다.
둘째, 통합학급 교사도 편하다. 매일 어떤 수업을 할지 머리를 짜내야 했는데, 대신 수업을 해 준다고? 특수 유아도 데려가고, 나머지 아이들도 전부 데려가서 봐 준다고? 통합학급 교사에게 이만한 '이득'은 없다. 내 경험상 이걸 거부하는 통합학급 교사는 없었다.
셋째, 특수 유아에게도 좋다. 일단 특수학급에는 특수 유아의 선호도를 반영한 놀잇감이 많다. 그래서 또래와의 놀이를 촉진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생긴다.
넷째, 통합학급 유아들에게도 좋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로운 놀이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과 적응력이 향상된다. 또 절반씩 나누어 오는 학급의 경우, 인원이 적당히 분리되기 때문에 놀잇감과 놀이 영역이 풍부해져서 갈등도 적어지고, 유아들의 욕구도 적당히 채워진다.
이렇게 통합학급의 유아들을 특수학급으로 데리고 와서, '와! ㅇㅇ반 선생님이 우리 반에 오는 날은 ㅇㅇ반에 가서 놀 수 있는 날이네? ㅇㅇ반에는 재밌는 놀잇감도 많네? ㅇㅇ반 선생님은 재밌는 수업도 많이 해 주시네?'라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내가 그 반에 들어가지 않는 날에도 아이들이 통합학급 교사에게, '우리 ㅇㅇ반은 언제 가요? ㅇㅇ반 선생님은 언제 와요?'라고 조르게 만들어야 한다.
이외에도 관리자에게 '특수교사라 수업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수업을 열심히 하는 교사'라는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점, 내 수업 역량 자체가 올라가서 교사로서의 효능감이 올라간다는 점 등 장점은 수없이 많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는데, 내가 특수학급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잘 세팅해 두어야 한다. 특수학급에는 특수 유아들의 특성을 고려해 트램펄린/볼풀장 등 감각통합 영역, 텐트(진정 영역), 물과 모래놀이 영역 등 다른 교실에는 둘 수 없는 놀잇감을 둘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다. 이전에 근무했던 특수교사가 특수학급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면, 이제부터라도 내 스타일대로 특수학급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꾸며 보자. 쿠팡이나 키드키즈몰에도 재미있는 놀잇감이 많지만, 홍익무역을 적극 추천한다. 또 플레이탱고나 센서리트레인처럼 업체에서 직접 견적을 받아 상품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부터 수업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특수학급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할 수 있는 '만능 수업' 몇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자. 통합학급의 모든 유아들을 특수학급으로 유아들을 데리고 와서 하는 수업을 나는 '어울림 활동'이라고 부르는데(내가 만든 단어는 아니다), 이 어울림 활동으로 하기 좋은 놀이들은 아이누리 사이트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정말 아무런 준비 필요 없이 몸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활동도 많이 준비해 두어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특수 유아들만 '내 아이들'이 아니라, 통합학급의 모든 유아들이 다 '내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통합학급 교사가 특수 유아를 예뻐해 주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내가 먼저 통합학급 유아들을 똑같이 예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 사실 '장애'를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일반 교사라면, 특수 유아를 다른 유아들만큼 똑같이 예뻐해 주기를 바라는 건 어렵다. 까놓고 말해서 특수 유아가 통합학급에 방해가 됐으면 됐지, 도움이 되는 경우는 별로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교사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특수교사가 먼저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내 아이들, 네 아이들 나눌 게 아니라, 통합학급 전체를 '훌륭한 또래 교수의 자원'으로 바라보자. 유아특수교사가 만나게 되는 대다수의 특수 유아들은 또래와의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어렵다. 그런데 그걸 연습할 수 있는 자원이 온 교실에 영역마다 포진해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
아울러 요즘에는 일반 유아들 중에서도 장애 위험 유아들이 많다. 그 아이들을 잘 관찰하고 예방적인 중재를 통합학급 교사와 논의하는 것도 특수교사의 일이다. 대부분의 유치원에는 특수교사가 1명이다. 그러면 그 유치원에서 유일하게 그런 아이들을 선별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 아닌가?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모든 유아들을 '내 아이들'처럼 대하자. 이렇게 통합학급 유아들을 관찰한 내용을 통합학급 교사와 이야기 나누는 것은, 나중 글에서 다룰 '통합학급 교사와의 라포 형성'에도 아주 좋은 소스(source)이다.
통합학급 교사가 없어도 똑같이 학급을 운영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건 유치원 전체가 나를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유아특수교사는 '완전통합'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경우, 2개 또는 3개 학급에 나누어 들어간다. 매일 다른 학급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이때 각 통합학급 선생님이 하는 모습을 잘 관찰해야 한다. 아침 인사를 나누는 모습, 다른 일과로 전이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 주의집중 방법, 점심 식사할 때의 분위기, 각 놀이 영역에서의 유아들 수를 몇 명으로 제한하는지, 마무리 인사 방법 등을 모두 빠르게 기억하고 익히면 좋다. 그래서 통합학급 선생님이 아프거나, 일이 있어 출근하지 못할 때 대신 똑같이 일과를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뮤지컬로 따지면 '언더스터디(understudy)' 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어 만3세반(월, 수, 금)과 만5세반(화, 목)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두 학급의 선생님들이 학급을 운영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건 연령의 발달적 특성이나 학급의 규모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사의 스타일 자체가 가장 크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반의 아이들은 완전히 그 선생님의 스타일에 녹아들게 된다. 특수교사가 카멜레온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각 반 선생님의 스타일에 맞추어 일과를 운영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나에 대한 인식은 '언제든 반을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이 된다. (내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아무 때나 나에게 반을 맡기는 이상한 관리자나 교사는 없으니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있다면 그 기관이 잘못된 것이니 항의해야겠지.)
매일 다른 교실에 들어가니 이걸 익히는 게 초반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걸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유치원에서 여러 학급의 유아들을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유일한 교사가 된다. 그리고 관리자로부터 '저 선생님은 언제든지 반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인상을 준다. 또 나 같은 경우는 2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통합학급의 아이들을 모두 특수학급으로 데리고 와 내가 수업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럴 때 그 선생님이 사용하신 주의집중 방법이나 전이 방법, 그 학급에서 현재 많이 듣고 있는 노래 등을 활용하면 훨씬 더 아이들이 집중을 잘하고, 나를 동등한 '교사'로서 받아들이는 속도도 빠르다. (물론 특수교사도 동일한 '교사'이다. 아이들이 무시를 한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적다 보니,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속도도 2배로 느릴 수밖에 없다. 그 속도를 줄여준다는 의미이다.)
유치원은 다른 학교급과는 다르게, 교사의 수가 아주 적다. 하지만 행정 업무는 똑같이 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교사 한 명 한 명이 다 'ㅇㅇ부'를 통째로 담당하고 있고, 그 부서의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나만 해도 '특수교육부'이면서 '정보부'의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교사가 아이들의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상황이 그렇지 않다. 유치원의 행정 업무는 크게 교무부, 연구부, 특성화, 안전, 정보, 특성화, 현장체험학습, 물품, 교육복지(없을 수도 있다) 등이 있다. 그렇다면 행정 업무를 당연히 해야 하는 상황에서, 특수교육 업무 말고 다른 업무도 병행하라는 이유는 뭘까? 그건 유치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관리자로부터 인정받고, 일반 교사들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에 좋은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기 시작 전 업무 협의회 때 특수교육 일과 더불어 다른 일이 주어진다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말고 같이 해 보자. 못할 정도의 업무는 아니다.
물론 특수교육부는 특수 관련 모든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하나의 학교를 운영하는 것과 같다. 일이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일반 교사들이 하는 업무를 나누어 하면, 유치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유치원이 돌아가는 상황을 안다는 것은, 아는 게 많아져서 교무실에서 내 입지가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할 말이 많아진다는 거다. 그러면 나는 점점 '필요한 사람'이 되고, 그 입지를 활용해서 특수 유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아주 짧게 예를 들어보면, 나는 특수교육부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전반적으로 잘 해 내는 모습을 보여주어, 관리자에게 특수학급 보호자들만을 위한 연수를 열기 위해 예산을 더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그 요구는 당연히 수용되었고, 연수를 분기별로 총 4번이나 열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특수학급만을 대상으로 이 정도의 연수를 열 수 있도록 추가적인 예산을 더 허락하는 기관은 거의 없다.
내가 특수교사라서 '특수교육 관련 업무만 하겠습니다'라고 했다면, 과연 관리자 입장에서 예산을 더 주고 싶었을까? 물론 내가 요구한 건 무척 유익하고 필요한 연수였다. 하지만 그런 특수교사였다면, 예산을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안 줬을 것이다.
(간혹 저경력 특수교사를 만만하게 보고, 교무 업무나 연구 업무처럼 당연히 일반 부장교사가 해야 하는 중요도의 업무를 맡기는 말도 안 되는 기관도 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것이니 당당하게 항의하자.)
통합학급에 들어가 있는 것을 스트레스로 여기는 유아특수교사들을 많이 만난다.
'통합학급 선생님 눈치가 보여요.'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서 불편해요.'
이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저경력 선생님일수록 더 그렇다. 물론 나도 그게 쉽지 않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다른 반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을 '더부살이'로 여기지 말아라. 우선 우리는 동등한 '교사'로서 그 반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통합학급 교사를 '협력자'로 여기고, 그 안에서 내가 나를 위해, 특수 유아들을 위해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얻어내라. 통합학급 안에서 통합학급 교사의 수업을 멀뚱멀뚱 보고 있기만 하면 안 된다. 나는 유아특수교사로서 여러 교실을 다니며 여러 수업을 볼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그 장점들만 골라 빨리 체득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나만의 수업을 여러 개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것들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어차피 받는 돈도 똑같은데, 편하게 일하다 가면 안 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해도 된다.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하지만 우리 유아특수교사들은 일반 아이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아이들이, 인생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 아닌가? 그 아이들이 이 세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 첫 번째 가이드가 되겠다고 자처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처음이 힘들지, 나중에는 오히려 이렇게 일하는 게 편해진다. 내가 초반에 기반을 잘 닦아 두면, 내가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입소문은 금방 퍼진다. (이 바닥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좁기 때문이다.)
오늘은 유아특수교사로서 '일'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조금 적어보았다. 하지만 우리 유아특수교사들에게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인간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가는가이다. 이 쉽지 않은 인간관계에 대한 글은 나중에 또 적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