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갈 길이 먼가
얼마 전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다. 일의 성공과 실패는 디테일에서 좌우된다는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는 유명 세일즈맨으로서, 영업이나 사업,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특수교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특수교육도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나는 그 본질이 같다고 생각한다. 아래 글은 이 책을 통해 고찰한, 특수교육 현장에 대한 내 생각이다.
사실 특수교육 현장에 디테일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은 수없이 느껴왔다. 예시가 너무 많아서 무얼 예로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중 유아특수교사로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바로 '완전통합 실현을 위한 기반 부족'이다. 이 문제에 대해 크게 유아 배치, 특수교육실무사 배치, 그리고 추가 지원인력 배치에 대해 다뤄 보겠다.
초등특수나 중등특수와는 다르게, 유치원은 기본적으로 '완전통합*'으로 운영된다. 즉, 일반 유아들과 특수 유아들이 일과 내내 한 교실에 있다는 뜻이다.
한 유치원에는 (특수교사가 1명이라고 할 때) 특수 유아 정원이 4명이다. 그런데 연령이 다 다른 경우가 태반이다. 예를 들어 5살 1명, 6살 1명, 7살 2명이 배치됐다고 하자. 그러면 특수교사는 몸을 셋으로 쪼개지 않는 이상, 하루에 1명 또는 2명밖에는 볼 수 없다.
*완전통합: 만3-5세 장애/비장애 유아가 구분 없이 개개인의 요구가 반영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일반유아와 특수교육대상유아가 등원에서부터 하원하기까지 모든 일과를 완전 통합해,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협력하는 형태로 함께 학급을 운영하는 것.
이미 여기에서부터 교육의 질은 떨어진다. 교사는 아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모르니 보호자와 하원하며 대화를 하면, 전문가처럼 보이기 어렵다. 실제로는 특수교사보다 특수교육실무사, 또는 특수교육 관련 자격증도 없는 일반 자원봉사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특수 유아들도 있다. (아마 보호자들이 구체적인 실정을 알면 무척 분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건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완전통합은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아특수교사들은 특수 유아가 기관에서 최대한의 교육 경험을 얻어가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통합을 하라는 것 자체가 이미 디테일이 상당히 부족한 거다. (물론 난 신규 교사일 때부터 혼신을 다해서 어떻게든 완전통합을 하는 중이다.)
완전통합과 관련된 내용은 이전에 뉴닉과 브런치스토리에 썼던 글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유아특수교사에 대한 11가지 사실>
https://newneek.co/@lemon99/article/10750
<내가 완전통합을 고집하는 이유>
https://newneek.co/@lemon99/article/10917
다음으로 특수교육실무사* 배치 문제를 보자.
특수교육실무사는 교육공무직으로서, 유아특수/초등특수/중등특수를 가리지 않고 일괄적으로 뽑는다. 특수교사는 유아특수/초등특수/중등특수를 나누어 뽑는데, 실무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떤 학교급에 배치될지 알 수 없다.
*특수교육실무사: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의 학습 및 생활 지원을 담당하는 교육공무직원으로,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의 학습 보조, 생활 지원, 환경 관리 등을 담당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대부분 유치원을 기피한다는 사실이다. 유치원에 배치되면 합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고, 다시 시험을 보는 분들이 계실 정도이다.
그만큼 '유치원'이라는 곳의 업무가 과중하고, 유아들의 발달 특성상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다.
(초등특수나 중등특수가 마냥 편하고 좋다는 게 아니다. 나도 초등특수나 중등특수 동료들이 많기 때문에 현장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는 알고 있다.)
유치원은 '쉬는 시간'의 개념도 없고, 학생들의 연령이 낮아 자조 기술이 부족해 손도 많이 가며, 자잘한 시설 관리를 위한 일손도 부족하다. 우리 유치원의 특수교육실무사님만 해도 등원 지도, 쉬는 시간 없이 특수 유아 지원, 에듀케어반 하원 지도, 각종 전화 응대, 통합반 수업 자료 제작, 텃밭 관리, 모래놀이터 관리 등 한 시도 앉아 계시지 않고 수없이 많은 일을 하신다.
하지만 유치원이 일이 많더라도, 아이들이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로 유치원에서의 근무를 희망하는 특수교육실무사님들도 분명 계신다.
그러나 현재는 학교급을 나누지 않고 특수교육실무사를 배치한다. 그래서 여전히 유치원 근무를 원하는 실무사는 중학교에 배치되고, 중학교 근무를 원하는 실무사는 유치원에 배치되기도 하는 실정이다. 유치원 근무를 희망하지 않던 실무사를 배치받게 되면, 유치원 입장에서도 난감하고 협력이 쉽지 않다.
이런 특수교육 현장의 니즈를 이해한다면,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특수교육실무사를 학교급별로 뽑아 배치해야 하는 게 아닌가?
당연히 채용에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하지만 특수교육실무사 개개인이 원하는 학교급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감소한다. 우선 기쁜 마음으로 일하기 시작할 것이며, 특수교사 및 다른 교사들과의 협력도 잘 될 것이고, 이는 곧 특수 유아에 대한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 특수교육실무사도 원하는 학교급에 배치되고, 학교 및 교사 입장에서도 해당 학교급에 적합한 인력을 제공받는 셈이다.
물론 유치원에 지원하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다. 그러면 유치원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니, 그만큼의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어쩌면 이는 유치원이라는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업무량 자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사족: 특수교육실무사와의 긴밀한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든 유아특수교사들은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협력적인 실무사님을 배치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유치원 일이 너무 힘들다며, 교육과정 시간이 끝난 1시 30분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실무사님들도 계신다. 그러면 유치원이라는 조직은 이 팀원 한 명을 잘 달래서 끌고 가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정말 비효율적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아주 협조적이고 열정적이신 실무사님 두 분과 일해볼 기회가 있었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특수교육실무사와의 협력에 관한 내용도 쓰려고 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고 계신 특수교육실무사님과의 인터뷰도 담을 계획이다.)
특수교육 현장의 디테일 부족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추가 지원인력 배치'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교육청에서 내려주는 예산 자체가 부족하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인력 부족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니, 이번에는 그 '기준'에 대해 논하려고 한다.
이에 앞서, 특수 유아들이 어떻게 유치원에 오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은 특수교육대상자로 진단을 받고, 유치원에 '배치'된다. 공립유치원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적 장애* 또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로 판정받아 오기보다는 대체로 '발달지체***' 판정을 받아서 오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너무 일찍부터 특정 '장애'로 진단하지 않음으로써 낙인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유치원에 배치되는 특수 유아들 중, '발달지체'로 선정되는 유아들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지적 장애: 지적 기능과 적응 행동에 어려움이 함께 있어 교육적 성취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자폐성 장애: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관심과 활동을 보임으로써 교육적 성취 및 일상생활 적응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
***발달지체: 신체, 인지, 의사소통, 사회·정서, 적응행동 중 하나 이상의 발달이 또래에 비해 현저하게 지체되어 특별한 교육적 조치가 필요한 영아 및 9세 미만 아동.
그 취지는 너무나 좋다. 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유아들의 장애 중증도나 그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지원인력 배치이다.
언어, 인지, 자조 기술 등이 거의 일반 유아와 다르지 않은 특수 유아도 '발달지체',
시도 때도 없이 교실을 뛰쳐나가고 다른 아이들을 때리며, 놀잇감을 훼손하고 다니는 특수 유아도 똑같이 '발달지체' 판정을 받는다.
후자의 특수 유아들인 경우, 일대일로 지원 인력이 붙어도 때로는 아이를 놓칠 때가 있으며, 통제하기 어렵기도 하다.
교육청의 지원 인력 배치 매뉴얼이 어떻게 되는지는, '심의위원회의 기밀사항'이라며 알려주지 않는다.
어떤 매뉴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특수 유아들의 중증도가 아닌, 숫자부터 본다는 거다. 왜일까? 그게 가장 수치화하기 쉽고 눈에 보이며 확실한 지표이니까. 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다. 특수 유아 숫자가 많다고 반드시 더 힘이 든 건 아니라는 말이다. 작년에 맡았던 특수 유아 4명에게 들어간 에너지를 다 합쳐도, 올해 맡았던 특수 유아 1명에게 들어간 에너지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특수교육에서는 '특수교육대상학생에 대한 개별화교육(Individualized Education Plan, IEP)'을 하라고 한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도 명백히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그 특수교육을 행하는 현장은 전혀 개별화되어 있지 못하다. 디테일하지 못하다는 거다.
특수 유아를 배치하는 과정에서부터 연령을 다르게 배치해서 특수교사를 매일 만날 수 없는데, 어떻게 질 높은 특수교육을 제공한다는 말인가?
그래, 그래도 이 문제는 더공감교실* 같은 사업으로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하자.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수두룩하다.
*더공감교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사업으로, 학급별로 특수교사를 배치하여 공동 담임제를 기반으로 통합교육을 실현하는 사업.
특수교사와 함께 아이를 가장 긴밀하게 지원하는 특수교육실무사를 채용하는 과정부터 디테일하지 못한데. 어떻게 유아와 그 보호자가 만족할 만한 특수교육을 공교육 내에서 제공한다는 말인가?
교육 현장의 필요를 세밀하게 고려하지 않고 가시적인 기준을 먼저 내세워 추가 지원인력을 배치하는데, 어떻게 현장의 교사들이 열의를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한단 말인가?
이렇게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운 교육 환경에서, 과연 양질의 개별화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외에 특수에듀케어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는 나중에 다루도록 하겠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 높은 유아교육 현장을 만들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유아특수교육은 어떠할까?)
나는 올해 신체적, 심리적으로 너무나 소진이 심한 한 해를 보냈다.
아이들 보다가 몸이 망가져서 나가는 정형외과와 한의원 비용? 까다로운 요구로 나를 힘들게 하는 보호자? 그런 건 다 괜찮다.
내 심리적 소진의 8할은,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교실을 둘러보면서 현장의 고충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장학사님들, 어려운 건 알지만 예산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교육청 분들, 유치원 완전통합교육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으면서 현장의 이런 어려움을 '해걸이'라고 표현하시는 교육과장님 때문이었다.
나는 현장을 사랑한다. 하지만 내년에 대학원에 가면, 현장에 돌아오는 걸 다시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유아특수교육 현장이 좀 더 디테일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