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랑 단둘이 오랫동안 시간 보내고 싶어요'
※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유아특수교사로서 현장에서 일하면, 특수 유아들도 많이 만나지만 그 형제자매들도 종종 만나요.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를 둔 이 아이들을 비공식적인 영어 표현으로는 'Glass Children'이라고 해요. 정말 적절한 비유이지요. 비장애형제자매들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기도 쉽고, 내면이 상처받기도 쉽기 때문이에요. 오늘 글은 제가 유아특수교사로서 만났던 한 어린 비장애형제자매의 이야기예요.
이 글을 장애 자녀와 비장애 자녀를 모두 둔 보호자들이 볼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비장애 자녀가 어린 시절에 자신의 형제자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뭐라고 말하는지, 형제자매가 이 아이들의 삶에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글이기 때문이에요. 보호자들이 비장애 자녀의 입장을 헤아리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오늘도 별님이가 울면서 등원했다.
'집에서 또 무슨 일이 있었나?'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별님아, 선생님은 항상 별님이 편이야.
서운한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와서 얘기해.
선생님이 다 들어줄게. 오늘 아침에 속상한 일 있었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어?"
아주 개미만한 목소리로 입술을 달싹인다.
"나도 엄마랑 더 오래 있고 싶은데... 엄마는 맨날 오빠랑만 더 있어요."
"우리 별님이도 엄마랑 둘이서 더 있고 싶은데,
엄마가 항상 오빠랑만 더 있어서 서운하구나."
'뭐 그런 걸로 우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장애형제자매 위주로 돌아가는 집안 분위기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미 보호자의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와, 그 욕구가 채워지지 못해 생기는 서운함이 한껏 가득차 있다. 아직 어리기에, 그 부정적인 감정을 건강하게 배출하는 방법도 모른다. 그 서운함이 조금만 건드려져도 흘러넘치는 거다.
유아기는 발달 특성상 자신의 필요에 가장 집중하게 되며, 자신의 욕구가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비장애형제자매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형제자매의 필요', '형제자매의 욕구'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주말 지낸 이야기 시간.
월요일 아침마다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발표하는 시간이다.
별님이가 친구들 앞에 섰다.
"놀이터에 가서... 놀았는데... 오빠가... 머리를 때렸어요."
바닥을 보고 느릿느릿 말한다.
별님이의 이야기를 듣던 다른 아이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너무 놀라고 아팠겠다. 그래서 별님이는 어떻게 했니? 엄마께 말씀드렸어?"
"네. 그래서 오빠가 혼났어요."
"별님이는 혹시 오빠가 왜 그러는지 알아?"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그 이후 주말 지낸 이야기 시간에도, 별님이가 하는 말들은 비슷했다.
"오빠가 좋아하는... 공룡 박물관에 가서... 공룡도 보고... 놀았어요."
"엄마랑 같이... 오빠 치료실 가서... 오빠는 수업하고... 나는..."
별님이가 뒷말을 흐렸다.
무얼 했는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5년도 채 살지 않은 별님이는,
벌써부터 장애가 있는 '오빠'의 삶에 1+1로 붙어 있는 느낌이다.
통합학급 선생님하고도 종종 별님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하고 상담할 때 별님이한테도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려요.
그런데 어머니 귀에는 안 들리는 것 같더라고요.
오빠에 비해서 너무 잘하고 있다고, 원래 스스로 잘하는 애라는 말씀만 하세요."
부모의 눈에는 비장애 자녀가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부모가 그렇게 한 것을 후회할 거라는 것도 안다.
'이 아이한테도 똑같이 애정을 쏟아주었어야 하는데. 똑같이 시간을 할애했어야 하는데.'
몇 년 뒤에 고개를 돌려보면, 저만치 뒤에 남겨진 비장애 자녀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올 거다.
하지만 그건 장애 자녀가 있는 모든 가족이 겪는 일이다. 어쩔 수가 없다. 부모에게는 이미 시간과 노력이 몇 배로 들어가는 자녀 한 명이 있기에, 다른 자녀는 그만큼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비장애형제자매들에게도 이른 시기부터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제가 유아특수교사 하기를 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어요. 특수 유아가 성장했을 때에도 뿌듯하고, 보호자들께서 연수가 유익했다고 말씀해 주실 때에도 뿌듯해요. 하지만 가장 뿌듯할 때는, 유아기 비장애형제자매들을 다독여 줄 수 있을 때예요.
"별님아, 오빠 때문에 속상한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와서 다 얘기해.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별님이 편이야."
몇 번 이렇게 이야기한 뒤로, 별님이는 저만 보면 "김민아 선생님!"하고 부르며 달려와서 폭 안겨요.
그리고 가끔, 오빠 때문에 서운하거나 속상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해요.
"그랬구나. 너무 속상했겠다.
선생님이 엄마한테, '별님이하고도 단둘이서 많이 놀아주세요'하고 얘기해 줄까?"
그러면 별님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요.
그리고는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놀잇감을 찾으러 가요.
마치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요.
'나도 어렸을 때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늘 있나 봐요.
아니, 분명 있었겠지만 저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어쩌면 제 안에 미처 자라지 못한 내면 아이를 스스로 다독이는 느낌이 나서 뿌듯해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제가 만나는 이 아이들이라도, 비장애형제자매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이나 외로움을 최대한 덜 겪게 하고 싶어요.
자기 형제자매의 '다름'을 느끼면, '이해가 안 돼요. 내 형제자매는 왜 그래요? 설명해 주세요.'라고 쪼르르 와서 물어볼 사람이 있기를.
때로는 '왜 내가 양보해야 돼요?'라고 투정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그 사람이 제가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