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원면직을 '안' 한 이유

할 뻔하긴 했지만 그래도

by 레몬자몽

나는 원래 2년차까지만 일하고 의원면직을 하려고 했다.

2년차 겨울에 일반대학원에 합격했는데,

휴직을 하려면 교육경력이 3년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내 성격상,

1년은 기다리기에 너무 길었다.

나는 '임용고시, 필요하면 다시 치면 되지!'라는 마인드였다.

하지만 '교사 그렇게 쉽게 그만두는 거 아니다'라는 주변의 만류에 1년을 더 일했다.


여차저차 1년을 더 보내고 이제 와서 든 생각은,

'지금이라도 면직을 할까?'였다.

연수휴직을 하면서 겸직이 불가한 게 타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과 쪽 대학원처럼 돈을 벌면서 다니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면직을 하고 과외를 해야 생활비라도 벌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도 사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면직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글이다.




1. 보험


나는 안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선택이나 도전을 높이 평가하지만, 아주 보수적으로 접근한다.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도, 대학교를 선택할 때도 그랬고, 인생의 자잘한 갈림길에 설 때 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에게 이 직업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보험과 같은 역할이다. 분명 힘들지만, 그래도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보험. 내가 갑자기 크게 아파서 공부를 중단해야 한다거나, 집안의 재정적인 문제처럼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생겼을 때,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게 해 준다는 안정감이 크다.


2. 보장되는 게 많다


이 직업은 '보장되는 것'이 많다. 국가가 신분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우선 대출이 기깔나게 잘 나온다. 나는 2년 전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 별다른 서류 없이 신청 금액 전액에 대해 심사가 쉽게 났다. 이번에 추가금을 얹어서 대출을 최대치로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모두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은행들이 버팀목 대출을 잘 안 해 주더라고? 내 직업이 무척 큰 역할을 했다. '교사'라는 사회적 지위가 주는 무형의 자산이다.


단체 보험도 그대로 보장된다. 적어도 1년간은. 그 다음 해에는 어떻게 되는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대체로 그대로 적용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연수휴직에 대한 내 다른 글을 참고해 주길 바란다.


https://brunch.co.kr/@lemon99/76


대학원 다니는 건 교사 경력으로 인정도 해 준다. 비록 호봉은 오르지 않지만. 그래서 내 계획으로(어디까지나 계획이다) 석사를 2년 하고, 박사를 3년 하면 벌써 5년이 경력으로 인정된다. 박사를 마치는 데에 더 오래 걸린다고 하면 6년까지도 볼 수 있다. 여기에 휴직 기간은 연금법 상 '재직 기간'에 포함된다. 이 모든 게 10년까지만 교사 생활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는 큰 메리트였다.


3. 현장과의 연결고리


'교사'라는 타이틀은 현장과 연구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 준다. 연구자의 신분이지만, 결국 나는 현장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의 목소리에 항시 귀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또 현장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만, 연구의 적용과 같은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옳은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연구를 해 나가면서 내 생각이 맞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4. 심리적 무기


내가 하려는 일을 할 때, 어디 가서 나를 '교사'라고 소개할 수 있는 건 심리적 무기가 된다. 교사로서 연구를 하는 것은 내 연구에 더 큰 당위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또 듣는 이로 하여금 '현장을 경험하고 온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나라는 사람을 어필할 수 있다.




사실 AI로 난리가 난 이 시대에는 눈만 돌리면, 손가락으로 검색 조금만 해 보면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천지에 널려 있다. 또 나중을 위한 보험이라고 해도, 나는 충분히 실력과 경력이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라도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공부가 영 잘 안 풀린다 하더라도, 나중에 기간제 교사로도 일자리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돈을 못 버는 게 많이 불안한데, 그냥 면직하고 일하면서 연구할까?'하는 생각을 지금도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휴직을 통해 확보한 심리적 안정성과 시간이, 미래의 내 연구가 가지는 가치를 더 높여줄 거라고 믿는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나에게 달려 있으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달려 봐야겠다.


*대표 이미지 출처: Gemini 나노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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