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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현다현 May 28. 2022

퇴직으로 해방이 되었나요?

10년/400일의 휴식이 필요한 저성능 충전기 탑재자

어느덧 공무원을 퇴직한 지 464일이 지나버렸다.

D-day 어플을 퇴사 50일 전부터 신나게 돌렸는데

삭제하지 않은 탓에 퇴사 후에도 카운트가 계속되고 있다.


퇴직 후 초창기에는 '뭐 아직 퇴직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네' 하던 안일한 생각이 어느덧 464일이라니...


보통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라고 회고록을 적겠지만

난 열심히 공무원의 옷을 벗기 위해 노력했고,

10년의 공무원 색을 완전히 탈색하기 위해서는

최소 400일이 필요했던 것 같다.

고성능의 급속 충전기가 아닌 저성능의 아주 아주 천천히 충전이되는 그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놈의 성격으로

르꼬르동 블루 제과 과정도 졸업하고, 또 런던 르꼬르동 블루의 비건 제과 과정도 수료했다.

팽팽 실컷 놀기도 했다.


400일이 필요했던 이유는 우선 그동안 몸이 너무 지쳐있었다. 그 지친 몸이 이제야 겨우 회복이 된듯하다. 만성피로자 이지만, 지금도 사실 피곤하지만 마음은 상쾌하다.


공무원은 9 to 6인데 뭐가 그렇게 피곤하냐 반문하시는 분들께는 꼭 직접 근무 체험을 하실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일복이 많은 탓인지, 아니면 일을 만들어내는 쪽인지 아직도 미스터리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후자인듯하다.(내 팔자 내가 만든다고...)

일이 없는 팀으로 한 번은 옮긴 적이 있었다. 다들 부럽다고, 절간(보통 일이 크게 많지 않고, 평온한 부서를 일컫는 저만의 용어집입니다.)이라고 했으나 웬걸,

나는 퇴사 하루 전까지도 조급증을 느끼며 일만 하다가 결국 짐을 못싸서 그 주 주말에 가서 짐을 가지고 나왔다.

같은 일이었는데 전임자는 관리만 하면 된다는 일을 어느 순간에 보니 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있었을까... 유지만 했었더라면 난 퇴직하지 않았을까...

불편하거나 개선해야 할 게 있으면 덮지 못하는 그런 성격 탓이다. 그래서 상사들은 나를 좋아하기고, 이용해먹기도 했다. 어떤 분은 자꾸 일을 만든다고 싫어하기도 했는데, 결국 결과에는 좋아하더라.

그래서 나는 저런 상사는 되지 말자고 다짐을 했는데, 꼰대가 되기 전에 나와서 다행이다.


사실 일이라는 게 드라마 13화처럼 딱 끝나는 게 아니라서 정말 언리미트드다. 그걸 끊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일 뿐,


몇 년 전 중요한 행사가 있어 거의 한 달간을 정시에 퇴근한 날이 없었다. 그날은 바로 행사 전날. 마지 만날 챙길 것이 많다 보니 당연히 야근각! 같은 팀 직원들이 "뭐 도와줄 거 없지?'라고 답을 정하고 가버린다. "도와줄게. 뭐하면 돼?" 도 아닌 자기들 스스로 답을 내버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

일을 같이 하는 파트너사와 함께 결국 새벽 5시까지 행사를 챙겨보고, 2시간 자고 다음날 행사는 칭찬을 받으며 무사히 끝났다. 파트너사 직원도 나도 지쳐 그 이후 각자 혼자 여행을 떠났고, 나는 그 직원의 마음에 감사해서(누가 새벽 5시까지 일을,,,) 샤넬 향수를 선물했다.(나도 안 샀던)


콩쥐인지 팥쥐인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헷갈린다, 여하튼 불쌍한 애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물독이 깨져있는데도 물을 받아두는 미련한 사람. 나의 10년 공무원 생활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 그렇다고 해서 늘 이런 것은 아니다. 즐겁고 인간미 폴폴 나는 스토리는 차차 풀어야겠다. 어쩌면 대기업은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경주마 같았다. 마음의 여유는 하나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오로지 승진을 위해 가는 모습들이 마음을 놓으니깐 보이기 시작했다.


400여 일간 긍정적인 변화는 조급증이 사라진 것이다.

온라인 홍보가 주된 업무였던 나는 늘, 매일 조급증으로 살았던 것 같다. 매일매일 홍보해야 했기에, 늘 콘텐츠 압박으로 가득 찼고, 중간중간 깜빡이 없이 들어오는 업무들에 영혼이 타들어갔다, 10년 더했음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아직(?) 공무원인 친한 분이 문득 내게 물었다.

"퇴직이 해방되었나요?"

나의 답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해방되었다"라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같은 현실 반영 드라마에 요즘 꽂힌 탓도 있지만, 오후 2시의 찬란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나는 해방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참 많은 것 같다.

다만 선택을 하지 못하거나 안 할 뿐이다.

해방이 포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퇴직도 한번 해보고 전혀 다른 길을 한 번은 걸어봐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해방의 맛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다음 글 예고) 빵은 배신하지 않는다 :D


르꼬르동 수업 중 즐거워하는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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