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느끼는 불안함
7월의 첫 월요일, 오전 8시.
속초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지역 특성상 군복을 입은 승객이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군복과 얽힌 부담스러운 경험이 있어 20대 내내 군인을 보면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다. 낯선 경험에 대해 잠깐 말하자면... 21살이었나 22살 때쯤, 서울에서 부산행 무궁화호를 타고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 역 이름은 정확히 기억 나질 않는다. 기차가 플랫폼으로 진입하려 속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때, 군복을 입은 남성들이 시야로 들어왔다. 한두명이 아닌... 플랫폼 전체를 가득 메울 정도의 수였다. 그날 따라 내가 탄 칸에는 승객이 나 뿐이었고 나머지 좌석을 흙냄새를 몰고온 군인이 채우기 시작했다. 좌석이 꽉 차자 상급자처럼 보이는 남성이 그 수를 확인하고, 이윽고 나를 한번 쓱 보고는 발길을 돌려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부담스러웠다. 당시 여고를 졸업하고 여대를 다니고 있던 터라 남성과의 교류가 없었다. 더욱이 결속력이 강한 공동체에 끼어든 것만 같아 불편함에 자는 척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 이상을 동석했다. 때문에 그 후로 군인을 보면 그때가 떠올라 웃기기도 하면서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얼떨결에 군인과 가까운 사이가 되어 오히려 군복을 보면 반갑기만하다.
그렇게 버스는 민간인과 군인을 태우고 속초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출발과 동시에 잠이 들고. 눈을 떠보니 뒷자석에 있던 군인이 운전석으로 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고, '화장실...'이라는 앳된 군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5분을 달렸을까. 버스는 졸음쉼터에 정차했고, 군인은 허겁지겁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때 마음 속에선 두 가지 생각이 충돌했다.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는 용기가 멋있다!'
'출근하는 분도 계실텐데 이해해주시겠지?'
그렇게 군인에 대한 존경심과 걱정이 뒤섞일 때 버스 안이 웅성웅성 거리더니 승객들이 하나 둘 웃기 시작했다.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듣자 하니 나이대가 어느 정도 있는 승객분들이었다. 손자의 귀여운 실수 같아 보였으려나. 안도감에 다시 눈을 붙였다. 그런데 왠지 자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용기 있는 군인이 버스에 탑승하면서 머쓱해하거나 미안한 표정을 보일 걸 상상하니 이 광경을 놓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군인이 돌아오지 않았다. 기사님의 움직임에서 초조함이 보였다. 그때, 또다른 군인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버스를 박차고 나갔다. 그때 또 한번의 웃음이 들렸지만 걱정이 되었다. '배가 많이 아픈가?', '화장실에 휴지가 없나?', '힘든 일이 있어서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서울에 가기 싫은 건가?' 상상력이 버스를 뚫고 과거로 돌아가 화장실에 간 군인의 표정을 떠올렸다.
'분명 기사님에게 웃으면서 말했는데...'
나쁜 상상이 온 몸을 휘감았다. 화장실로 가볼까, 그럼 남자분을 데리고 가야겠지, 여기서 경찰이나 소방관을 부를 수있으려나.... 그때, 날 상상지옥에 가뒀던 군인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가 버스를 떠난 지 20분 만에 말이다. 버스 승객 그 누구도 그에게 따끔한 눈초리 하나 보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주변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그 크기가 크던 작던 누구나 그 돌덩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돌덩이를 어디로, 어떻게 던지고 깨부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 조차도 심리 코칭을 1년 반 동안이나 받았으니 말이다.
무거운 돌멩이를 다루는 법을 알긴 어렵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를 진득이 기다려주고, 곁에서 웃어주며 그의 안위를 생각하며 기다리는 것이 그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
갑자기 너무 진지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