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yla Y Oct 28. 2020

情도 정도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사회적 거리두기, 과연 물리적 거리만으로 충분한가

  사회적 거리두기. 어쩌면 이것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포함하여. 물론 제한적인 공간에서 한정적인 자원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의 삶에 너무나 밀착하여 있는 ‘정情’ 사회에서야말로 다시금 돌아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를 위해 밟아 가는 단계에 있어 ‘보편적’인 것들은 그것이 보편적인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인만큼──물론 그것이 인간성과 윤리의 테두리 안에 존재한다면──각자의 선택도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서로 간의 거리가 무척이나 좁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정’ 문화도, 내가 너를 생각해서 말한다는 듣기 좋은 포장으로 타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어찌나 많은 훈수와 제약을 두는지 모른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문화에 대한 소화력도 달라져서, 이제는 사람들도 이 좁은 거리에 신물이 난 듯하다. 이를 잘 드러내는 방증이 요 근래 세대 갈등의 뜨거운 감자로 언급되는 말 ‘꼰대’와 ‘라떼는 말이야’ 아닌가. 그러니 이제 경험자는 말을 아끼고, 실행자는 행동과 결과에 합당한 책임을 지면 충분하다.



  개인주의에 대한 찬양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가 이야기하는 개인주의는 오히려 이기주의인 경우가 많고, 자유라기보다는 방종인 경우가 많으니까. 자연 상태의 인간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낙심이 딱히 새롭지도 않다.


  ‘정’으로 대표되는 사례로,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 관심을 가지고 돕는 것은 물론 아름답다. ‘정’ 사회의 모든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한마디 보태자면 그 긍정적 문화라는 것이 단순히 ‘좁은 거리’에서 나오는 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거리보다는 여유의 크기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적나라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타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궁핍한 가운데 타인을 돌아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용납도, 이해도,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긍정적인 것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바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익숙하면서도 '실재'로는 낯선 사회적 거리두기 모델과 그에 대한 교육이다. 좁은 거리의 반대말이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 적정 거리 보장으로 얻는 개인의 자유, 자유에서 오는 여유, 그리고 자유에 따르는 책임.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라면 우리도 조금 더 서로를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사랑스러운 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