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o Live
작년을 기점으로 유명 MC가 쏘아 올린 '부캐 열풍'이라는 공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삶에 큰 영감이 되고 있는 듯하다.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는가에 있어서 각자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상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직장에서의 삶만이 자신의 삶이 아닌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직장과 직위가 나를 대변할 수 있을까. 내가 자유를 느끼는 것, 내가 즐거운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내가 자본을 얻는 수단과 동일하다면 참 이상적이겠지만 아쉽게도 내 경우는 아니었다.
물론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나 부담을 받는 부분도 없고, 어떤 부분은 자긍심이 될 때가 있지만 그렇다 해도 나의 일이 '나'라는 사람을 오롯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직장과 진짜 나의 삶을 되도록 분리하려는 편인데, 굳이 따지자면 나는 '부캐'로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부캐로 일합니다 - Work to Live
대학을 막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나도 나의 전문성으로 성공하고 말리라는 열정과 포부가 넘쳐흘렀다. 그렇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고, 패션은 취미로 하라던 선배들의 자조적인 조언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닫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seven eleven.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7시에 출근하고 11시에 퇴근하는 삶. 그나마도 주말에는 윈도쇼핑이라는 명목으로 시장조사를 나간다. 일은 경쟁의 연속이었고, 그 와중에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은 적었다. 처음에는 적은 보상에도 열정과 초심자의 즐거움으로 해나갈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물적이든 심적이든 보상은 너무나 필수적인 연료였다.
"월급 때문에 그래? 얼마 인상하면 더 같이 일할 마음이 들 것 같아?"
"저는 적어도 제 노동량만큼은 받고 싶어요. 200은 되어야 생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분야에서 그렇게 받을 수 있는 데 없어."
"그래서 이 분야에서 일 안 하려고요. 물론 꼭 돈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저 스스로가 이 일에 비전을 못 찾겠어요."
내 공식적인 첫 직장이자 디자이너로서는 마지막 직장이 된 회사의 사직을 결정하는 날이었다.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사실 내 진심을 상당 부분 반영한 답변이었다. 과도한 노동 시간은 지양하고 싶었고, 적어도 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그 산업이 추구하는 방향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 안에서 나의 미래가 보이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 분야와 그 일에 사활을 걸고 인생을 걸기도 한다. 그들의 선택과 그들의 삶을 존중한다. 심지어 존경하기까지 한다. 가끔은 내가 너무 나약해서 포기해버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겠다. 그냥 나는 추구하는 바가 다른 사람인 것뿐이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서야 본격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되돌아볼 충분한 심적 여유가 주어졌다. 물론 같은 고민은 학창 시절에도 대학 시절에도 했지만, 직장을 다니는 사회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은 그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마치 대학 때 배운 전공 지식이 막상 실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아직 학생일 때 나는 나 스스로가 굳이 일을 만들고 일을 찾아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워커홀릭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쓸 데 없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고 웃긴 오해였는지 깨달았다. 나는 내가 관심을 두고 동기 부여한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뿐이지 보통 사회에서 말하는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 적당한 보상도 중요했다. 그러니까 나는 live to work 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오래 달릴 수 있는 엔진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공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자고. 직장이 꼭 내 명함이 될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본캐로 살고, 부캐로 일하는 묘한 공생을 선언한 것이었다.
내 주요 가치가 회사 밖에 있다고 회사 일을 등한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내 일을 꽤 좋아한다. 비행기 안에서 일하는 것 자체도 좋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다. 일 해야 할 때 집중해서 화끈하게 일하고, 쉴 때는 하루 종일 늘어져버릴 수 있는 패턴도 좋다. 어제는 마드리드에 있었다가, 오늘은 한국에 있고, 또 내일은 상하이에 있는 삶도 좋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나 정말로 일 열심히 한다. 집에 돌아와서 구두를 벗으면 밀려오는, 마치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발바닥의 통증마저 뿌듯할 만큼.
그저 열심히 키운 부캐로 열심히 일하되, 내 오감은 본캐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것들, 나의 가정, 인생 전체의 목표는 회사라는 장소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느끼는 어려움, 인간관계, 때로는 부당함, 그런 것들이 내 본연의 영역까지 건드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사회적 페르소나라 하던가. 때로는 인격과 성격까지 분리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일은 일대로 여유가 생겼고, 나의 삶에 대한 만족감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내 부캐는 또 언젠가 인연과 기회가 달라져서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선택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기회비용도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걱정되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가치는 여전히 내가 아는 곳에 있다. 그때도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일 할 거고, 덕분에 ‘진짜’ 내 삶을 즐겁게 살아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