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의 흔적

집 앞 누군가의 토의 변천사

by lemonluna

어느 날 출근할 때면 지나는 동네 교회 앞 계단에서 토를 처음 만났다

주황색의 배경에 여러 가지 이물질들이 정말 거하게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예상 못하고 있다가 마주하게 되면 역해진다.

문득 그 토를 보면서 0.1초 만에 스르르륵 만나지도 않았던 그 사람의 어젯밤 모습이 그려진다.


분명 무언가 안 좋은 일이 그에게 다가왔고,

술에 의지해 제정신을 놓았고 그는,

결국 비틀비틀 친구의 손에 의지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 계단에 토했을 것이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모두 내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나온 것들이어서

틀릴 수도 있다.

다만 내 경험에서 보통 이 정도로 술을 마실 때는

주로 기쁘다기보다 슬프거나 미친듯하게 세상에 무력할 때 였기에,

왠지 만나지 못했던 이 오렌지색 구토의 그 사람도 비스무리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 추측을 하게 된다...


무슨 일이었을까....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매일 거니는 길목의 계단이어서 원치 않아도 자꾸 그 계단의 토를 마주하게 된다.

교회 앞 계단의 오렌지 색 토가 회색으로 , 베이지 색으로 점점 색이 바래 지면서, 옅어지고, 그 뒤로 몇 번의 소나기가 내렸다.


그리고 한 달,

우연히 다시 본 그 계단의 구토의 흔적은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언제 그랬었냐듯이,


이 모습을 보면서

하늘의 구름은 계속 흐르고 시간도 계속 흐르고 이 땅의 모든 것들이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어쩌면 그 날 이 구토의 명작을 남겼던 이도 그날의 일은 흘리고 잘 살 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쨍하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면서,

그 순간의 고통도 지나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다시 이 생각을 넓혀보면,

자신이 원하던 대로 안되거나,

실패하거나,

좌절하거나,

우울하거나,

화가 치밀더라도,


이 모든 것들은 순간이고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인생사가 어떻든,

시간은 흐르고 자연은 늘 거기에서 위로가 되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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