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봤다. 집에 TV가 없어서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짧은 클립으로 되어 있는 영상들을 봤다. 남편 박민환에 의해 죽기 전 강지원을 보면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웬만하면 좋게 생각하려고 하고, 마음에 있는 싫은 소리를 잘 못했던 나의 모습이었다. 누군가 나를 오해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 갈까봐 아니라고 해명하지 않았던 나. 죽고 다시 살아난 강지원이 달라진 건 자기 한계를 정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뿐인데 인생이 정말 변화한다.
지인과 식사를 하다가 지인의 지인이 이혼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지인은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지인의 지인은 그 외도한 남자를 "전생의 남편"이라고 부른다고. 그녀는 현생에서는 행복하게 연애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보면서 '전생의 남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전생에 강지원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남편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신혼에 달달해야 할 사람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심상치 않자 사람들은 우회적으로 연락을 해왔다. 내 인생에 던져진 폭풍에 휩쓸려 이리저리 정신없이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던 때에 대인기피를 이겨내고 사람들 앞에 서려고 할 때마다 두더지 게임처럼 나를 망치로 다시 밀어 넣었던 말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너무 무례하고 사적인 질문들
대학원 동기 J가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며 잘 지내냐고 연락이 왔다. 그는 J에게 행사 일정을 물었다고 했다. J의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그가 좋아하는 강사진이 왔다고. J가 그에게 나의 안부를 물었는데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도 그 J에게 종종 연락을 했었다고.
J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폭력 때문에 이혼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J는 그럴 수 있느냐면서 그 사람이 무슨 일로 돈을 버는지,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너무 구체적으로 물어왔다. 지극히 사적인 것들까지도.
J의 질문이 너무나 불쾌하게 느껴졌다. 나를 정말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질문인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왜 불쾌하다고 한 마디도 하지 못했을까.
이혼하고 나서 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J를 마주쳤다. J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최근에 J는 결혼했다. 나는 당연히 결혼식에 안갔다. 서로가 싸한 이 느낌.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는 이 느낌.
나에게 직접 연락하면 안 되겠니?
결혼해서 신혼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대학 동기들이 나와 친한 동기 H에게 나의 근황에 대해 물어왔다. 대학 동기들은 나보다 4살이 어리다.
동기 M과 동기 S는 너무 자주 뻔한 의도로 동기 H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그러면 동기 H는 나에게 직접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우회적으로 연락하는 것이 더 기분 나쁘다. 직접적으로 마주해서 네가 느낄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내 얘기가 왜 궁금한 건데?
내가 이혼 후 잠깐 미혼의 남성과 연애를 했었는데 그 남자는 동기 M이 결혼하기 직전 만났던 남자였다. 동기 M은 결혼하고 나서도 그 남자의 근황을 염탐하였는데 어느 날 그 남자의 프로필에 내 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 동기 H에게 연락해서 "소름 돋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이혼하고 미혼 남자랑 연애하는 거냐면서.
그녀는 사회정의를 외치며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는 그런 태도를 보였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네가 말하는 신앙이 대체 뭔데,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서 묻지도 못하는 것을 너는 왜 함부로 대하는데.
동기 S는 자신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결혼하고 잘 살고 있느냐고. 그래서 나는 폭력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동기 S는 폭력은 초장에 잡아야 한다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더니 다시는 연락이 없었다.
당신이 가진 순간의 호기심이 누군가에겐 상처이고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혼 조정기간일 때 어떤 공연을 보러 가다가 같이 가는 사람들과 한 차를 타고 간 적이 있다.차주인은 젊은 부부였다. 여자는 내가 다니는 상담소에서 미술치료사로 일한다.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여자는 갑자기 뜬금없이 나에게 결혼을 했냐고 물었다. 보통 처음 본 사람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는지를 물어볼 텐데 결혼을 했냐고 물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결혼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상담을 받고 있다고.
그랬더니 그 여자는 어떤 상담을 받았냐고, 상담받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어떤 부분이 좋아졌냐면서 꼬치꼬치 물어왔다. 이때는 불쾌한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던 때라서 그냥 어영부영 넘어갔다. 같이 다른 사람들은 안보인 건가. 내가 결혼하고 헤어졌다고 말했는데 어떤 상담인지가 네가 왜 궁금한 거니.
안녕을 묻는 것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한날은 어떤 사람이 지인에 대한 얘기를 해왔다. 자기 지인이 이러저러한 남자를 만났는데 결국에는 결혼식 들어가기 전에 그 사실을 알게 돼서 파혼을 했다고. 그러면서 이혼보단 파혼이 낫다고 했다. 언니 저는 이혼했는데요.
결혼을 준비하고 이혼을 하면서 소중했던 사람들과 이별했다. 상황은 정말 이상하게 흘러갔다. 가십러들을 차단하면서 연락처를 정리했다. 그리고 나의 에너지를 아껴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쓰고 무례했던 사람들을 차단하고 그 에너지를 나에게 쓴다. 내가 차단을 한다니.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니라고 말하는 것
더는 호락호락하게 호구 잡히지 않는 것
무심코 던진 작은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사람들은 왜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남의 아픔에 대해 쉽게 말하는 걸까? 내 삶의 스토리를 편집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나의 이야기를 타인이 편집했을 때 상처가 된다. 자신이 겪지 않았다면 입 다물고 함께 웃고 울어줘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처럼 나의 아픔에 함께 울어주고 내가 행복한 것에 함께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다. 인생이란, 인간이란 뭘까 생각한다.
나는 왜 사는가? 생각하다 보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나눠진다. 시대의 한계와 나의 한계가 만나고, 내가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역지사지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내 글을 통해서 뭔가 변화되고 행복해지면 좋겠다. 나도 내 글을 통해서 나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