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아볼까

에필로그

by 레몬숲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며 산다는 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 그냥 이런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겐 당뇨가 있듯이 나에겐 우울증이 있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만큼 대단한 우울이나 또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우울이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나부터 찾아야 한다. 불안할수록 조급하지 않게,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나를 먼저 찾으면 그다음부터는 앞을 보면 된다. 이미 지나간 것을 어쩌겠는가? 이제까지 고민 많이 했고, 이만 하면 됐다.


나의 몸이 하는 말을 무시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고 소홀히 하는 것은 내가 나를 학대하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충분히 휴식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면이다. 나는 모든 일에 성실하고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잠을 포기했다. 잠은 죽어서 자는 거 아니냐며. 그러나 완벽은 허상이다. 죽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죽으면 그냥 죽는 것임. 때로는 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차피 언젠가는 죽으니까 살아있는 동안에 해볼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졌다.


나만의 피난처를 만들고 이 안에서 온전히 나의 것에 집중한다. 나의 피난처는 글쓰기이고, 블루투스 헤드셋이다. 물소리가 나는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한참을 끄적이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글들이 써지고 글 속의 솔직한 나를 본다. 그리고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좀 우울하긴 하지만 이때까지 너무 잘 살아오고 있구나 하는 짠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내가 남들을 바라봤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 것뿐이었다. 한없이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을 나에게도 해주는 것이다. 나는 누가 툭 건들면 물속에 빠질 것 같이 물가에 불안하게 서있는 아이 같았다.


특별히 나는 경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나의 시간을 정했다. 경계를 세우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싫다는 말을 연습하고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 말한다. 타인이 나의 경계를 알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은 결국 나를 지키고 상대도 지켜준다.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했다.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은 적이 처음이라 물질적으로 매우 부족하지만 마음이 편안하다. 진짜 내 것을 하는 것 같다. 복잡하게 살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주체적으로 살 때 가장 몰입한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날아갈 것 같다. 나의 무의식 속에서 의무감을 버리니 고통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나의 내면을 타자화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돌볼 여유가 생긴다.


나는 일관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진실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확실과 일관에는 얼마나 많은 덫들이 있는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한계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한결같을 수는 없다. 그렇구나 받아들이니 공간이 생겨난다. 개방성을 가져야겠다.


이혼이 주는 사회적 무게감에 많이 눌려 있었다. 한동안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상대방을 속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 만나고 싶고 소수의 사람들과만 만나고 싶었다. 나를 보호하는 것일까. 세상과 단절하는 것일까. 결국은 내가 스스로 나와야 한다.


여전히 오랜만에 연락이 된 사람들은 결혼생활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미 입소문으로 다 알지 않을까 괜히 저러나 싶다가도 그냥 말해준다. 폭력 때문에 헤어졌다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이혼한 이유를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했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을 안위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일까? 자신의 삶과 남을 비교했을 때 그나마 내 인생이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자신의 위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연애하고 헤어지면 이별이지만 결혼하고 헤어지면 이혼이다. 이별은 여러 방법으로 온다. 나처럼 신혼 이혼을 겪는 사람도 있고 살다가 상대방의 외도로 헤어지기도 하고 사별로 헤어지기도 한다. 한치 앞날을 알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괴로움을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어떤 말보다 진심의 위로가 필요하다. "네가 그걸 다 알아서 뭐 하게? 정신 차려라"라고 그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분노가 한동안 나를 삼켰었다.


음주운전을 한 사람이 차를 몰고 나에게 달려들면 거기에 있던 내가 문제인 걸까? 음주운전을 한 사람이 문제일까? 필요 이상의 감정을 끌어안고 힘들어했다. 누군가의 메시아가 되어 모두가 행복했으면 했다. 이제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애썼던 에너지를 나에게 쓸 것이다.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었다. 인생 사기당한 내가 너무 한심했지만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비극의 반대는 일상이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나 겪고 나서 성장한 것들이 정말 많다. 나는 트라우마를 가졌으나 외상 후 성장했다. 평지에서 바라보는 저 산은 거대하고 무섭지만 하늘에서 바라보는 산은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그럴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간다. 마음을 채우고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것을 찾아간다.


나는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과 섬세함은 일을 할 때 쓰는 것이지 인간관계에서 쓰는 게 아님을 배웠다. 그런 일을 겪은 나를 충분히 애도하고 가끔씩 올라오는 절망들에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세상에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19페이지의 원고가 <신혼이 없었는데 돌싱이 되었습니다>가 되고 <상처 입고 조금씩 아름다워져 간다>가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글들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는 것이 나를 가장 기쁘게 한다. 이 원고들은 슬픔 대신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근심 대신 노래가 되게 했다. 나의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최선이 되어간다. 인생은 한 번쯤은 살아볼 만한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인생이 한번 주어지는 것인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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