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를 했던 적이 있다고?

트로피 와이프

by 레몬숲

그는 나와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혼인신고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다. 어차피 우리는 결혼할 건데 혼인신고 빨리 할 생각이 없느냐고. 혼인신고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차 안에서 반지 던지기 전까지, 이때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세상 이런 남자가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면 자신이 어떻게 나처럼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냐고. 이건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신 거라는 말을 자주 했다.


결혼하기 전에 그의 친척을 만나러 인천을 다녀오던 날 그는 구청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나에게 "혼인신고 하기 싫으냐"라고 말했다.


나는 계속 머뭇거렸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그가 차에서 내려서, 나도 따라 차에서 내렸고.

그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길래 나는 뒤에 앉아 있었고.

그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길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냥 다시 가져올까...

이게 맞는 걸까...

에이, 결혼하기 전에 여자들이 다들 느끼는 거겠지!


그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신혼집은 내가 살던 자취방에서 시작했다. 나는 그가 돈이 없는 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벌면 되는 것이었고, 나는 일 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일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양가 혼수도 안 하기로 했다. 그는 정말 말 그대로 내가 살던 집에 '몸만' 들어온 것이었다. 난 집에서 독립을 좀 빨리 한 편이라서 이미 있어야 할 것들이 다 있었고 그가 필요할 책상이나 가구들은 내 돈으로 꾸며도 아깝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빨리 신혼부부 LH를 신청해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어차피 결혼할 생각이었으니까 혼인신고를 하는 것에 거부감은 있었지만 안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고, 거절하지를 못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후회하며 자책하고 통곡했는지 모르겠다. 결혼하기 2주 전 혼인신고를 했고 헬 게이트로 가는 헬 브릿지를 걸어간 것이다. 결혼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이혼하자고 할 사람인 것은 꿈에도 알지도 모른 채 난 그렇게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





그날은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 서류를 떼는 김에 혼인관계증명서도 보고 싶었다. 신혼여행에서 그 난리가 났지만 그냥 내가 우울 성향이 있으니까 살면서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그의 학대를 부정하고 별 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려 노력했던 걸까.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뭐든 좋게 해석하려고 했다. '나니까 자신의 아픔을 보이는 거겠지.. 많이 힘들었겠지..'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할수록 나르의 괴롭힘은 심해졌다.


노트북을 하다가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나르에게 농담으로 "혼인신고를 한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오빠, 혼인신고 한 적 있어??ㅎㅎ"


그랬더니 그가 갑자기 발작을 했다.


"야! 너는 그런 적 없어?"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아니. 너는. 그런. 적이. 없.냐. 고?


"아니, 너는 그런 적이 없냐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혼인신고 한 걸 당연히 말을 해야지. 왜 말을 안 해?"


ㅋㅋㅋㅋㅋㅋ...


진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나르시시스트와의 삶은 처음엔 상황 파악이 안 됐다가 황당하고 어이없다가 슬프고 아팠다가 거짓말에 속았다는 것에 억울했다가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가 그에게 보인 내 진심들이 너무 아깝고 나 자신이 창피하고 허무하다가 번아웃이 찾아오고 나의 생명을 경시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살아남으면 인생에 평화가 온다. 그러나 평화가 오기까지의 과정은 죽음 직전까지 가야 하며 겨우 죽었다 살아나더라도 마음 한편이 먹먹해지는 것을 반복하고 미친 사람처럼 화가 났다가 잠잠해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이 단단해진다.


상황을 들어보니 내용은 이랬다. 나르시시스트가 대학에 다닐 때 사귀었던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랑 2년 동안 동거를 했다고 한다. 같은 학교 사람이라 나도 아는 여자였다. 좀 웃기는 얘기지만 나랑 나르시시스트가 사귀게 되면서 그 여자랑 결혼할 거 같았는데 왜 결혼 안 한 거냐 물어봤더니 내가 생각났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을 안 하게 됐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2년 동안 동거를 하면서 신학교를 다닌 거였고, 엄마 이름을 증인으로 써서 둘이서 혼인신고를 했는데 그 여자 쪽 엄마가 기초수급자였던 것이다. 기초수급자일 경우에 가족인 누군가 소득이 잡히면 기초수급비가 안 나오기에 그 여자 엄마가 동사무소에서 난리를 쳐서 혼인신고를 무효시켰다고 했다.


"그러면 나랑 혼인신고 할 때 말을 했어야지. 이건 사기 결혼 아니야?"


그러자 그의 발작버튼이 눌렸다.


"아니 내가 그걸 너한테 왜 말하냐?"




나르시시스트에게 목숨처럼 중요한 것은 선한 이미지, 평판이다. 주례 목사님을 만났을 때 목사님께서 "두 분은 언제 혼인신고를 할 생각이신가요?"라고 물으셨다. 나르시시스트는 참으로 머뭇거렸다. 나는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씀드렸고 집에 오는 길에 왜 머뭇거리냐 물어봤더니 결혼 전에 혼인신고를 했다고 하면 안 좋게 볼까 봐 그렇다고 말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나에게는 빨리 혼인신고하자고 보채더니, 사람들 앞에서는 이미지 관리를 한다는 게. 이것이 나르시시스트의 실체이다. 착하고 선한 양처럼 웃고 있지만 그 가면 뒤에는 내게 칼을 꽂으려고 눈을 쳐들고 웃고 있는 악마가 있다.


나르시시스트가 나랑 싸울 때 했던 말들이 있다. 자기가 과거에 헤어져왔던 같은 패턴으로 가고 있다고. 그 말이 그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그냥 자기를 투사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나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왜 나한테 이렇게 행동하느냐' 물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에게 이렇게 해도 되느냐'라고.


그는 말했다.


"너 성향 자체가 어차피 다른 사람하고 결혼해도 이렇게 살 애였어! 내가 아니더라도 넌 니 우울 때문에 이렇게 됐을 거였다고. 하나님 안에서 선택하는 게 다 인간의 선택도 있는 거 아니야? "


그가 아무리 개 같은 말을 해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네가 아니면 더 행복하게 살 사람이었을 거라고. 내 마음속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사랑받는 연애들을 해왔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랑 결혼을 한 거지? 왜 나는 내가 챙겨줘야 할 것 같은 사람에게 끌린 거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참 싫어했다. 나는 나의 단점이나 연약한 점을 고치려고 정말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정말 변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무지몽매함은 다른 사람도 나 같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발작은 항상 똑같은 패턴이었다. 자기 양껏 퍼붓고 나면 다시 자상 모드인 것처럼 보이다가 또 폭언을 했다. 내가 겪은 일을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선택한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 있을 때 순한 척, 착한 척, 신실한 척했기 때문에 내가 주변에 결혼생활에서 어려운 것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뭐라고 했다. "네가 별나서 그렇다.", "남자들은 원래 좀 그렇다", "하나님이 너를 훈련시키시는 것이다."라고... 나는 그들이 몰라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 확신한다. 그때는 더욱 내가 겪는 폭력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는 신혼여행 내내 탈진해 있었고 내 생명을 경시해가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대책 없는 믿음은 소중한 생명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나는 세상에 이런 종류의 인간이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처음엔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내가 결혼 사기를 당할 수가 있을까... 겪어 보기 전에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사기꾼, 결핍증 뱀파이어들이다.


그렇게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에게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을까? 진심이 있던 순간은 있었을까?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빈껍데기를 채워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타인에 기생해야지만 살 수 있는 악마이면서도 피해자이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핑계 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결혼식이 끝나고 내 하객으로 온 남자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눈으로 쳐다본다고 말했다. 그의 친누나에게 나와 결혼을 한다고 말했을 때 그의 누나는 '이번에도 또 그러냐'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때 그는 그의 누나에게 '이번에는 다르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있어 배우자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이용할 수단일 뿐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고 가족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도구이자 자신은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합리화를 위해 세워진 잘 훈련된 덩어리일 뿐이다.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심장이 없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거짓 자아를 감추기 위해 자신을 숭배할 대상을 찾기 때문에 자신의 성향과는 반대되는 헌신적인 사람을 타깃으로 삼는다. 그들의 먹잇감은 능력이 있고, 열심히 살고, 빼먹을 것이 많은 사람이다. 자신을 지속적으로 우월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공급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착취적인 관계에서 행복할 방법은 나르시시스트가 죽거나 나를 떠나거나 내가 그를 떠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렇지만 이 떠나는 것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으니 아예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 종류의 인간은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어떻게 이용할까, 빼먹을까 생각했다는 것이 참 소름 돋지 않은가?


성경에 나오는 악인들이 진짜로 존재하는 거였다. 어쩌다 그들은 악마가 된 것일까? 속이는 것은 마귀의 본성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기 것으로 말한다. 마귀는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아비다.


에베소서 5장 6절에서 바울은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라고 경고한다. 하나님은 진리를 말하지 않고 의도적인 불순종과 회개하지 않는 화인 맞은 양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에스겔 13:2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결혼이라는 축복이 저주가 되어 돌아왔다. 나에게 너무 소중한 가족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저주가 되어간다. 변하지 않을 사람은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애를 쓰고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생각할 수 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썩어야 그렇게 살 수 있는 걸까.


빨리 혼인신고 하려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배우자를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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