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벌어진 비극

사랑하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by 레몬숲

그는 참 다정했다. 나는 그의 하얗고 선한 눈매를 좋아했다. 뾰롱뾰롱하고 발랄한 성격을 가진 나와 달리 우직하고 얌전한 것도 참 좋았다. 나는 표현력이 풍부하다. 내가 조잘 거리면 그가 나를 조용하게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내가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좋았다.


그가 나에게 처음 교제하자고 한 날. 당일치기 강릉 여행을 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서 하지 못하는 모습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휴게소 문에는 병균이 많다고 손잡이를 잡지 못하게 했다. 나는 아프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한번도 큰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항상 나긋나긋하고 느리게 말했다. 나보다 4살이 많았지만 늘 존댓말을 했고, 나를 '~씨', '~님' 이라고 호칭했다. 나는 그의 배려가 좋았다.


내가 이제 집에 가자고 할 때 그는 계속해서 시간을 끌었다.

한 바퀴만 더 돌아요. 조금만 얘기 더 해요.


이것이 나의 영혼을 착취하기 위한 연기인 줄도 모르고 참 좋아했다.




데이트를 하던 어느 날,


그는 나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뻤지만 왠지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결혼 전에 많은 여자들이 느끼는 그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이 나를 구원하기 위한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여자들은 막상 결혼을 할 때가 되면 마음이 불안하다고 했다. 그런 건 줄 알았다.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결혼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을 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오빠 나 결혼이 참 부담되네. 아무튼 잘 생각해 볼게!


차에서 내리자 그는 창문에 반지 케이스를 던지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거 가지고 가서 다시 생각해!!!!


나는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봤고, 소리 지르는 것도 처음 봤다. 그가 그렇게 까지 화를 내는 것에는 내가 뭔가 말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이렇게 까지 화가 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이.


나는 다시 차에 탔다.


"응? 오빠 왜 소리 지르고 그래.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거야?"


그러자 갑자기 그는 울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의 가정사는 좀 복잡했다. 4남매 중 둘째이지만 장남이다. 연년생 누나가 있고, 자신과 쌍둥이 남동생과 배다른 여동생이 있다. 누나, 쌍둥이 남동생은 부모가 같고 마지막 여동생은 계부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계부와 엄마는 사실혼 관계라서 등본상에는 아버지가 등록되어 있지 않다.


그를 낳은 아버지는 그가 4살 때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래 그의 집안은 마포에 땅이 있을 정도로 꽤 부유했다고 한다. 남겨진 세 아이와 그의 엄마는 가난하게 살았고, 엄마와 사실혼 관계로 현재 살고 있는 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같이 살게 된 것이라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아빠"라고 부르라면서 계부를 데려왔는데 계부는 이들을 매우 심하게 학대했다고 한다.


그날도 심하게 맞고 밖으로 내쫓겼는데 그가 악에 바쳐서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집으로 들어갔더니 엄마랑 그 새아빠랑 성관계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성관계는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과 여자라는 성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성을 탐닉하여 성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았으나 신앙을 갖고 나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어떻게 부모를 용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엄마와 누나를 어떻게 전도했는지도 말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이 돈을 잘 버는 것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진짜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해 줘야겠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변할 수 없는 것은 없으니 내가 사랑해 주면 이 사람은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나는 그가 가진 결핍에 대해서 연민을 느꼈다. 불쌍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해 주면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정이 많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정말 내가 간절히 이야기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내 노력으로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고 착각이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는 죽음 앞에 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정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헬게이트를 내 손으로 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결혼 전에 상대방의 부모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하는지 너무 아픈 수업료를 내고 알게 되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법적으로 정리된 시간이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엄마의 카톡 프로필은 결혼식에서 가족들이 다 같이 찍은 사진으로 되어있다. 그 엄마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 나르시시스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세 명이 있다. 그의 친엄마, 그의 누나, 그리고 나다.


그의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너한테 만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이렇게 하자 있는 아들을 왜 결혼을 시킨걸까. 그의 엄마는 지랄난 아들 하나를 떨쳐 놓을 수 있어 편하게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싸한 것들이 정말 많았다. 그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항상 그의 분노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잘 케어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그에게 다혈질 성향이 있는 구나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렇게 보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으니까. 가끔 욱하는 모습이 있었지만 그려러니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 혼인신고를 했던 적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남이 버린 쓰레기, 내가 주워왔네.

keyword
이전 02화신혼여행 3일차, 그는 나에게 이혼 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