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3일차, 그는 나에게 이혼 하자고 말했다.

신혼여행부터 시작된 폭력

by 레몬숲


어제 결혼식을 하고 하루를 보내고 난 다음 날 아침이다. 결혼식이 끝나니 긴장이 풀리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 건지 배가 아파 이불을 칭칭 감고 누워있었다.


야! 너는 왜 약속을 안 지키냐? 하는 고함 소리와 함께 뭔가 쾅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이불 밖으로 빼고 보니 캐리어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고 바닥엔 캐리어 안에 있던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갑자기 난 큰소리에 눈만 멀뚱멀뚱 뜨고 그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너는 왜 약속을 안 지키냐? 아침에 성산일출봉 가기로 했잖아!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온 이유는 그가 제주도를 오고 싶다고 해서였다. 사실 나는 몰디브를 가고 싶었는데.

싼 값에 치르는 허니문인 것인가.


오빠, 근데 왜 소리를 질러?


이렇게 작은 약속도 안 지키는데 내가 어떻게 너랑 사냐!!


.....?


정말 나의 표정은 이랬다. 동그란 이모티콘 두 개가 나란히 있는 멀뚱멀뚱하고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건 무슨 상황일까.

나는 지금 신혼여행을 왔는데? 쟤는 왜 소리를 지르고 있지?

꿈인가 생시인가.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럼 오빠 혼자 성산일출봉 갔다 와. 나는 지금 배가 아파서 일어나질 못하겠어.

진작 배가 아프다고 말을 하던가! 어우씨! 나 밖에 나간다.


이건 무슨 상황일까.

나는 지금 배가 아프고 저 사람은 화가 나 있다.

그런데 왜 나에게 배가 아프냐고 묻지를 않는 걸까.

(네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캐리어부터 부셨잖아... 미친놈아... )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는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화를 내냐"라고 물었다.

그는 "너는 왜 그걸 모르냐"라고 했다.

(말을 해줘야 알지 이 새끼야.. )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 걸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그를 보며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얼굴이 흘러내렸고, 멍했고, 눈물이 났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갑자기 결혼식장에서 문이 열리기 전의 그 긴장감이 생각났다. 문 밖엔 하객들이 가득했다.

나는 높은 굽의 신발을 오래 신고 있어서 발이 아팠다. 나는 발을 꼼지락거렸다.

그는 나에게 "똑바로 서"라고 말했다.


똑바로 서라고....?


나는 문 밖의 하객을 뒤로하고 도망치는 상상을 했다.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잘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


웨딩촬영을 할 때에 드레스를 챙겨줬던 이모님은 이상한 여자였다.

남자한테 잘해야 한다는 둥. 드레스는 이걸 입어야 한다는 둥.

내 결혼에 입을 드레스를 자꾸 자기가 골라줬다.

나는 전남편에게 이모님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나한테는 안 그러던데?"라고 말했다.




튼 얼굴을 세수하고 서울에서 로션을 챙기지 못해서 그의 챙겨 온 로션을 발랐다.

그는 내가 본인의 로션을 쓸 때마다 나를 쳐다봤다.


왜?


그거 비싼 건데, 네가 쓰지 마.


어??


그거 비싼 거니까 쓰지 말라고.


뭐라고? 이거 올리브영에서 그냥 사면되는 거잖아. 진심으로 하는 얘기야?


네가 쓸 거였으면 서울에서부터 챙겨 왔어야지.


....?




신혼 첫날밤이 지나고 그는 나를 그대로 두었다. 나는 한번 하고 버려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성관계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어느 날 임신을 하고 학교에 왔다고 말했다.

자기는 그 여자 선생님이 '그 짓'을 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그 여자 선생님을 쳐다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여자 선생님이 더럽게 느껴져서라고 했다.


오빠도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는 다른 여자들이랑 자본 적 있으면서 아기 가진 선생님을 왜 더럽게 생각해?


그는 자신의 군대 선임이 사창가에 데려갔던 이야기를 했다. 성매매를 해본 적이 있었다고.

자기는 어차피 여자들도 깨끗한 사람이 없으니까, 선임이 해보라고 돈을 내줘서 했다고 했다.


성매매 해본 적이 있다고?


나는 내 몸이 순간적으로 더러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잖아. 하고 애써 그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질문에 그는 수치심을 느꼈는지 화를 냈다.


그걸 물어보는 거 실례 아니냐!!!!!!


.......?

네가 성매매 해본 적 있다고 방금 말했잖아..........




신혼여행 3일 차,


나는 숙소에 있는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자고 했다. 온몸에 진이 다 빠지고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일단 지금 나에게 무슨 상황이 일어난 건지 현실 파악이 되질 않았다.


그냥 빨리 서울에나 가고 싶었지만 결혼식을 막 하고 왔는데 이렇게 서울에 가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잘 풀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쩌면 잘 풀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영화를 고르고 있는데 그가 너무 잔인한 영화를 골랐다. 나는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를 싫어한다고 했다. 그는 그럴 거면 영화를 보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 뭘 하냐고 했더니 그의 발작 버튼이 슬슬 눌리기 시작했다.


야 너는 왜 네가 하고 싶은 거만 하려고 하냐?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무서운 건 못 본다고 했잖아. 여기에 있는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잔인한 영화를 골라?


너랑 나는 맞는 게 하나도 없어. 아 이럴 거면 뭐 하러 결혼을 했냐! 그냥 이혼해!


........ 뭐라고?


아 그냥 이혼하자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읽는 당신은 알고 있으려나.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말 하나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저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내 얼굴이 흘러내린다는 것과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도 핸드폰은 계속 울려댔다.

결혼 축하한다고. 신혼여행 잘 다녀오라는 축하의 메시지였다.

제주에 10년 된 친한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밥 사주겠다는 연락을 계속 무시했다.


아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나중에 연락할게!


누나 제주도 왔으면 나 보고가


나는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상황 판단이 전혀 안 됐고 정신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중간중간 사진과 영상을 찍어 나의 부모님에게 보냈다.

숙소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그는 소리를 질렀고, 그가 소리를 지르면 나는 얼굴이 흘러내리고 눈물이 났다.


제주도에 5일 동안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마지막 날, 나는 완전히 탈진해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저를 이렇게 버리시는 건가요. 저는 결국 이렇게 버림받을 영혼이었던가요. 저는 유기자였네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나는 내 온 신경과 정신이 정수리 머리끝에 있는 것을 느꼈다. 눈꺼풀이 무거워 뜰 수가 없었고, 말 못 하는 벙어리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말을 시작하면 싸움이 되니까.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사지가 뒤틀리는 것 같았고,

장기가 명치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온 맥박이 명치끝에서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를 데리고 크랩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제주도에 와서 싸운 것밖에 없다면서 마지막 날은 좋은 거, 맛있는 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크랩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애월 바다 앞 우주선 모양의 건물에 있는 크랩잭에서 그냥 그가 하자는 대로 했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그냥 가만히 앞에 있는 걸 먹었다.


그는 기념품을 사러 가자고 했다. 나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한 5분 지났을까


그가 빈손으로 다시 차로 왔다.


너 좀 나와야겠는데?


왜?


여기 사장님이 너 안 오면 물건을 안 판다고 해서


그럼 그냥 사지 말자


어른들한테 드릴 거 사야지. 빨리 나와.


애월에 있는 기념품점이었다. 신혼여행 와서 싸우는 커플들이 있으면 사장님은 화해를 먼저 하고 오라고 한다고 했다. 젊은 남자 사장님이었는데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그렇게 서울에 돌아온 날, 엄마는 신혼여행 가서 전혀 연락이 안 되는 딸이 걱정되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눈이 퉁퉁 부어 일어나질 못했다. 엄마는 뉴스에서 신혼여행 가서 죽어 돌아온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본 것이다. 엄마는 내 상태를 보고 울었다. 엄마는 그에게 너도 힘들게 살았겠지만, 내 딸도 상처가 많은 애라고. 이제 외롭지 않게 지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쟤가 신혼여행 다녀온 사람이 맞는 거냐고. 울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엄마에게 자기가 잘하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는 집을 나갔다.


정말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게 나의 신혼여행의 스토리다.


인생에 한 번 있는 가장 소중한 여행, 소중한 날.

모든 인생에 처음 있는 소중한 The day에 있었던 일들이다.


사실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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