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모닝선샤인 Dec 30. 2021

엄마, 피아노 좀 치고 올게

25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다


오늘 아침 등원을 시키자마자 피아노 연습을 하러 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는  시간이 나를 설레게 한다. 오선지를 따라 피어난 멜로디에 마음을 맡기면 복잡했던 마음은 하얀 솜처럼 가볍고 깨끗해진다.  영혼을 걸러주는 여과지 같은 시간. 답답했던 공기는 걸러지고 맑은 공기만 마음에 자리한다.

 

다시 피아노를 치리라고 다짐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호수공원을 걷고 있다가 피아노 학원이 새롭게 간판을 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 속에서만 품고 있던 배우고 싶다는 열정, 다시 시작하고 노력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순간 고개를  내밀었다. 용기를 내서 전화를 했고 다음   레슨을 받았다. 그렇게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 오랫동안 간절히 품고 있던 생각은 어떤 순간을 만나 자극받고 활짝 피어나서  인생을 밝혀준다.

​​

처음으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어찌나 떨리고 긴장되던지... 더듬더듬 건반을 누르며 굳어진 손가락을 응원했다. 샵이 두 개 달리면 무슨 장조였는지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지만 조금씩 건반을 두드리며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뎠다. 매일 연습하고 연습한 만큼 달라지는 피아노 소리에 설렘과 뿌듯함을 느꼈다. 연주하며 작곡가가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지를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는 강하게 그다음 부분에서는 점점 여리게... 음악도 글과 같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감정이 서려 있다.  황홀한 멜로디에 반하여 어느 순간 음악 속에 강렬히 빨려 드는 환상을 경험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멜로디와 하나 되는 순간의 경험. 그 마법 같은 시간에 중독되어 매일 건반 앞에 앉았다.

육아에 지치고 고립된 삶에 외로움을 느낄 때면 도망쳐 나와 피아노를 치러 갔다. 어질러진 집안 곳곳과 싸우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에 심신이 거덜 났을 때였다.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바로 악보만 들고 뛰쳐나갔다. 고민과 어지러운 마음은 한쪽에 내려두고 마음을 비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한동안 그렇게 몰두하고 다른 세상에 놀러  기분으로 연습실에 있고 나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그곳은 나만의 퀘렌시아, 영혼이 쉬어가는 공간이었다.


요즘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연습하고 있다. 물결이 호수면 위를 퍼져나가는  간지러운 바람의 흥얼거림을 듣는다. 어여쁜 새가  위를 날며 자유롭게 노래하는 풍경을 마주한다. 나는 육아와 살림에 메어있는 몸이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다른 세상을 건너고  안에서 치유의 힘을 발견한다. 거칠어진 내면을 따뜻한 커피처럼 메만져주어 회복의 에너지를 선물한다. 나만을 돌보는  시간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

다음 달에 작은 연주회에 참여한다. 내 아이들과 남편을 초대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집에서 치려고 하면 늘 자기도 친다고 방해하는 탓에 한 번도 제대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인적이 없다.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아이들을 앞에 두고 피아노 치는 장면을 상상한다. 엄마도 엄마 이기전에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엄마도 내 삶을 돌보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그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덤덤히 그러나 거룩하게 피아노 연습을 계속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모든 감정은 옳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