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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Dec 23. 2021

새벽 5시, 하루를 밝히다

새벽에 찾는 나만의 자유


또다시 가정 돌봄


2020년 11월 4차 대유행의 시작으로 첫째를 어린이집에 다시 보낸 지 한 달만에 다시 가정보육을 시작해야 했다. 한번 유행이 찾아와 확진자가 폭증하면 한동안 가정 돌봄을 해야 하는 현실을 몇 차례 학습한 후였기에 겨울 내내 두세 달은 집에서 돌볼 각오를 해야 했다. 코로나 이전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추운 겨울과 맞물려 바깥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더없이 가혹한 현실이 눈앞에 그려졌다. 여름에는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놀이터에서 뛰어놀면서 즐길 수라도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두 아이를 데리고 갇혀 지내야 하는 겨울은 육아에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 내 모든 시간과 자아는 아이들과 집안일에 희생되는 운명 같은 선포 앞에서 어떻게든 숨 쉴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이제는 생존의 문제였다.


겨울은 길고 더디게 흘러갔다. 산책과 놀이터 나가기 좋아하는 아이들인데 감기 걸릴까 봐 엄두가 안났다. 날이 조금이라도 풀리는 날에는 심해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다. 반복되는 감기로 두 아이가 번갈아 아팠다. 그런데 코로나까지... 천명을 육박하는 확진자 숫자에 벌벌 떨며 아이들을 끌어안고 집안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내 시간을 찾고 싶었다.


 하루 종일 내 시간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두 아이는 각기 다른 요구로 내 손길을 원했다. 나는 사라져 가는 내 시간을 찾아야 했다. 낮잠 자는 시간이 그나마 유일했는데, 첫째의 낮잠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겨우 책을 펼쳤는데 둘이 번갈아 깨어나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 때문에 책장을 닫았다. 30분 읽었을까.. 부서져 가는 내 시간이 아까워 손으로 움켜쥐고 싶었다.


밤에 아이를 재우고 무엇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아이들은 밤 10시가 넘어야 잠이 들었다. 아이를 재우다 피곤함을 못 이기고 내가 먼저 잠이 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다음날 아침에는 허망함이 온몸에 확 끼쳤다.


다른 시간을 찾아야 했다. 내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시간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샀던 책장의 ‘아침 5시의 기적’이라는 책의 파란색 표지를 발견했다. 어둠에 잠겨있던 내게도 아침 5시가 있을까. 먼지를 털어 책을 후루룩 넘겨봤다. 성공한 사람들이 새벽 5시를 어떻게 활용하였는지에 대한 글이 담겨 있었다. 숨 쉴 공간 없는 빡빡한 내 일상에도 작가가 말하는 기적을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시도해보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둠 속에 파묻힌 내 새벽 5시를 파헤쳤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다행히 새벽 기상 챌린지가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타임스탬프를 찍어 인증하는 형식이었다. 혼자서는 의지박약해질 것을 알기에 내가 일어날 수 있게 만드는 장치를 찾았다. 미션을 성공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했다. 알람을 맞추고 어떻게든 일어나기로 다짐했다.



새벽 5 나를 만나다


새벽 5시, 익숙하지 않은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끝방의 책상에 앉았다. 아직 잠이 덜 깨 얼떨떨 하지만, 내 책상 위에  새롭게 선물 받은 시간이 신선하고 신기했다. 그 시간을 귀하게 쓰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끄적였다. 독서와 영어공부. 책을 펼쳐 그다지 맑지 못한 정신으로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누군가의 방해 없이 온전히 나만 생각하며 책에 집중할 수 있다니.. 그 평범한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잠든 시간, 핸드폰에 신경 쓸 일도 없고, 아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길 일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시간. 그 새벽의 발견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대단했다. 마치 동굴 속에 있다가 빛을 발견한 것처럼 새로운 비밀의 문에 대한 희망에 들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아무의 간섭도 없이 진정한 나로 잠시나마 태어났다.


읽고 싶은 책은 늘 쌓여 있었다. 항상 시간을 쫓아 달리기만 하고 있었다. 시간은 늘 제 혼자 발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뻗은 손에 잡히지 않도록 멀리멀리. 그런데 이제 내 손에 잡히는 시간을 만난 것이다. 나는 시간의 손을 잡고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첫째의 울음이 들리면 내 시간은 부서졌다


그때 멀리서 첫째의 울음이 들려왔다. 엄마 없이는 절대 못 자는 아이, 새벽에 둘째를 보러 가면 어김없이 엄마의 흔적을 찾아 방문을 열고 나서는 첫째였다. 다시 잠들기만 바라고 숨 죽이고 있는데, 그녀가 '다다다다' 하며 달려 나왔다. 불 켜진 끝방 문을 열고 엄마를 원망하는 소리를 내지른다. 첫째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까만 어둠이 가득한 침대 위로 무거워진 마음을 뉘었다. 달콤했던 내 시간은 짧게 침식되어 갇혔다. 마음은 책상 위에 앉아 내 책을 읽고 있는데, 몸은 침대에서 첫째를 다독이고 있었다. 영혼이라도 보내 책을 마저 읽고 싶었다. 아이를 재우고 다시 책상으로 슬금슬금 몸을 이끌었다.


하루를 버티는 에너지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아이가 오래 자기를, 덜 깨기만을 바라며 아침을 이어갔다. 평균 30분에서 길어야 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한 시간이 하루를 버텨낼 에너지를 선사해줬다. 지치는 육아가 계속돼도 나에게 소중한 한 시간이 있다는 게 비밀 무기를 얻은 듯 이상한 힘을 솟게 했다.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나를 살게 했다.


새벽시간에 빠지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아무리 피곤해도 한번 달콤한 자유를 맛본 후로는 중독된 듯 그 시간을 찾기 위해, 잃지 않기 위해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싸늘한 새벽의 한기가 방안에 스며와도 이불을 어깨까지 감싼 채 책상 앞을 사수했다. 따뜻한 차 한잔을 곁들여 펼쳐진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내게도 삶을 리드하고 지휘할 약간의 가능성과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겨났다. 시간을 내편으로 삼고 싶었다. 무엇이든 시도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씨앗을 발견했다.


이제는 일상이 된 새벽 기상 - 모든 것의 시작


때론 피곤에 찌들어 일어났다가 다시 자는 날도 있었고, 며칠 늦잠에 빠져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새벽 5시를 만난 지 1년이 지났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미라클 모닝' 등의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들이 새벽시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았다. 나도 내 삶과 내 하루를 경영하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하루 계획을 세우는 것에 심취했다. 오늘은 더 멋진 하루가 될 거라고, 새벽에 한번 웃어주는 일이 하루에 남다른 활력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


오늘도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필사를 하고 전날 접어둔 책의 페이지를 열어 하루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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