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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Jan 17. 2020

피터의 작은 새

피터는 가방을 챙기는 중이었다.


텅 빈 교실의 한 구석에서 피터는 물에 푹 젖은 책과 필통을 들어올렸다.


주르륵 뚝 뚝 뚝


피터는 소매로 볼을 훔쳤다. 그럭저럭 책은 아직 쓸 만 했다.


필통 안의 물을 비우고 연필과 자, 지우개와 볼펜을 털어내는데 어디선가 푸륵푸륵 소리가 났다.

피터는 가만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네이선 패거리가 문 밖에서 웃고 있는 소리일까.


교실 창으로 오후 햇살이 느리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피터는 필통을 들어 탈탈 물기를 덜어냈다.


푸르륵


피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소매를 들춰보았다.


할머니는 항상 소매를 한번 접어주셨다. 큰 형이 입던 것을 작은 형이 입고 나서 피터가 입게 되는 옷들은 소매가 헤져 있었다.


접힌 소매 안쪽에 무언가 파닥이는 것이 있었다.


피터는 손바닥의 물기를 슥 닦고 소매를 펼쳤다.

그곳작은 새가 있었다.


새는 정말이지 작았다. 그리고 연신 푸륵푸륵 재채기를 해댔다.


피터는 새를 돌본 적이 없었다. 작은 새는 소맷단에 앉아 날개를 떨며 피터를 올려다보았다.

새는 정말정말 작았다.


피터는 맨 앞 줄 맥클레인 쌍둥이의 책상으로 달려갔다. 책상 서랍 안에는 역시 비스킷 조각이 가득했다.


새는 비스킷 조각을 두 손 가득 받아쥐고 얼굴을 파묻고 먹었다. 피터는 천천히 자리로 돌아와 한손으로 가방을 거꾸로 들었다.


촤륵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새가 꺄르릇 웃었다.


피터는 어깨를 으쓱하고 조금 웃어보였다. 그리고 가방 안에 물건들을 다시 넣었다.


아직 남은 물기로 등이 젖어왔다. 하지만 이제 교실 안은 길게 누운 창문 그림자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가는데 다시 푸르륵 소리가 났다.


잠시 고민하던 피터는 농구부 락커룸 문을 빼꼼 열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피터는 벽에 걸린 수건을 하나 빌리기로 했다. 할머니가 아시면 몹시 꾸중을 듣겠지만 새가 감기에 걸리게 둘 순 없었다.


수건은 아주 커서 새를 감싸고도 넉넉히 남았다. 피터는 남은 수건을 어깨에 둘렀다.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새도 더 이상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피터는 베개에 누운 새와 함께 잠이 들었다.

피터의 저녁 빵을 나누어 먹은 새는 그새 손바닥 만 하게 자랐다. 날개도 보송보송 말라있었다.


볼에 와 닿는 깃털엔 솜털이 섞여있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잠든 피터의 볼 위에 붉은 깃털이 이불처럼 덮였다.


피터는 싱긋 웃으며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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