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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Jan 05. 2020

집에 가는 길

길 앞의 차들이 번갈아 왼쪽, 오른쪽을 선택할 때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큰 짐을 잔뜩 싣고 코끼리 엉덩이 같은 굼뜬 뒷태를 툴툴 거리며 가는 트럭은 꼭 나와 같은 길로 간다. 반면에 희고 날씬한 물새 같은 고급 승용차는 꼭 마지막에 나를 앞질러 길을 바꾼다.


막힐듯 말듯 한 도로 사정에 슬슬 부아가 돋우어질 무렵, 그 개를 보았다.

흰 바탕에 검은 털이 널찍널찍하게 섞인 개는 도로 옆 풀숲을 뒤적이고 있었다.


마침 졸음 쉼터가 보였다. 이끌리듯 차를 세우고 나와 기지개를 켰을 때, 그 개는 어슬렁어슬렁 차를 향해 다가왔다.

먹거리라도 구걸하려는 걸까, 싶었지만 개는 나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느긋한 걸음으로 차를 지나 조금 떨어진 도로 경계석에 앉았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시고 환기라도 할 겸 차 문을 열어 두었다.

강바람이 뒷문으로 들어와 앞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꽉 막힌 도로로 흩어졌다.


한결 느려진 흐름에 돌아가고싶지 않아 운전석 시트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데도 시끄럽지 않았다. 골짜기의 넉넉한 공간에 오후의 소음이 내려앉고 있었다.


다시 시동을 걸 때에야 뒷좌석에 개가 탄 것을 알았다.

나는 당황하여 뒷문으로 갔다. 차문을 잡고 섰으나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개는 제 집 쇼파에 누운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눈을 들어 나를 보고 싱긋 웃더니 말했다.


ㅡ출발하라고.


나는 어찌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휴일 오후의 귀가길에는 별다른 핑계가 없는 법이다.


하릴없이 문을 닫고 도로로 복귀했다. 슬금슬금 우주의 누군가에게 들키지않으려는 듯 느린 전진을 하는 차들 사이에서, 개는 말을 걸어왔다.


ㅡ어디로 가?


집에 간다는 나의 대답에 그 개는 킁킁 소리가 나도록 냄새를 모아 맡더니


ㅡ개는 없군.


하며 다시 씨익 웃었다.


ㅡ밥그릇은 있지?


나는 많은 설명 대신 거짓말을 택했다. 남편이 개를 싫어한다고, 아이는 알러지가 있는 것 같다고, 미안하게 되었지만 다른 집을 찾아보라고, 구차하게 이어가는 나의 말이 점점 느려졌고 마침내 침묵이 흘렀다.


ㅡ부담 갖지 마.


그리고 그 개는 잠이 들었다.


도로가 두 배로 넓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차들은 속도를 내고 있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될대로 되란 기분이 들었다.


주차장에 와서는, 닻을 내리듯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함께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ㅡ어이, 문 열어야지.


미약한 저항으로 난처한 시선을 보내봤지만 소용 없었다. 개는 사뿐하게 차에서 내려 앞서서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포치 한켠에 놓인 빗물이나 진흙을 닦기 위한 러그를 보자 기쁜듯 꼬리를 흔들며 앉았다. 색도, 크기도, 그에게 꼭 맞는 러그였다.


잠시 후 어둠이 들어 찬 현관에 담요 하나와 그릇 두개, 옆집에서 빌어온 사료와 물이 놓였다.

아이는 개를 쓰다듬고 싶어했지만 날이 밝는대로 목욕을 하고 병원에 다녀온 뒤 만지기로 약속했다.


그 개는 그런 거 상관 없다는 듯 편안한 얼굴로 사료를 조금 먹고 다시 누웠다.


ㅡ잘 자.


가족 모두 늘 자던 잠을 청했다. 늘 꾸던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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