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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Feb 20. 2023

찬이의 밤

찬이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도 더 까만 어둠이 눈앞에 펼쳐졌고

찬이는 아까보다 더 말똥해진 눈을 떴다.


천장 어딘가에 불규칙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커튼 너머에서 비친 빛은 겨우 천장색을 몇 겹 덧칠한 듯 희미한 그림자를 던질 뿐이었다.

골목에 차가 오갈 때마다

이불 끝이 커튼을 건드릴 때마다

천장은 울렁거리며 음산해졌고

찬이는 도무지 똑바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꼼지락꼼지락 옆으로 눕자 한쪽 콧구멍에서 바람이 푹 슉 나왔다.

다른 콧구멍은 꽉 막혀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막힌 쪽에 손가락을 이것저것 넣어보다가 엄마가 머리맡에 둔 손수건에 슥슥 닦았다.

입을 벌려 하아 숨을 몰아내니 목구멍 끄트머리가 간질간질하다.

 기침을 하면 엄마가 올까. 약을 더 먹게 될까.


멍하니 목구멍 느낌에 집중하던 찬이는

침대 계단 저 아래에 누군가 매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ㅡ 인형이나 레고 조각을 두었었나

그러나 어둠이 가냘프게 얕아진 틈새를 타

찬이는 그 누군가가 계단 모서리에서 기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사람같이 보였고

찬이는 코나 입이나 어디로 쉬고 있는지도 모를 숨을 헙 막아세웠다.

왜인지 자고 있는 척을 해야할 것 같았다.

엄마가 열을 재러 들어올 때 처럼

찬이는 눈을 감은 척

깊이 잠든 척

가만히 있었다.


작은 사람은 찬이가 보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계단 첫 칸의 안쪽 끝까지 다가오자 보이지않다가

다시 둘째 칸 모서리에 손이 매달리고

영차영차 기어오르고

올라와서는 다시 끝까지 걸어오고

마침내 셋째 칸까지 손이 나타났다.

 ㅡ 다음은 침대일까

살짝 무섭고

너무나 궁금하여


찬이는 열심히 자는 척하며

더 열심히 작은 사람이 셋째 칸 안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방 안에서는 가습기의 작게 우우웅 하는 소리와

찬이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심장이 쿵쿵 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작은 사람에게까지 들릴 것 같았다.

이불을 끌어당겨 숨고 싶었지만

움직이면 가버릴까

아니 자고 있지 않은 나쁜 아이를 혼내주러 올까

아니 그냥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덧 실눈은 까먹고 쟁반만큼 크게 뜬 눈으로 침대 끝에


작은 손이 불쑥 나타나고

하나 더 나타나고

팔꿈치까지 나타나고 머리가 나타나고

영차

다리가 올라오고


작고 동그란 얼굴이 놀란 눈으로 마주보고 있는  것을 그저 보고 있었다.


잠시 둘은 입을 딱 벌린 채 서로를 보고 있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여린 빛을 온통 끌어담아 서로를 샅샅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만


엣취ㅡ


콧물이 주르륵

작은 사람은 벌러덩


대롱대롱 콧물을 매단 찬이가 벌떡 몸을 일으켜 뒤로 자빠진 작은 사람을 보았을 때

그는 이미 허둥지둥 헐레벌떡 계단을 굴러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처 쫓아가기도 전에 방의 어둠 한 구석으로 달려가버렸다.


오싹 몸이 추워지고 콧물이 주룩 쏟아졌다.

찬이는 손수건을 집어 일단 대충 문질러 닦으며 계단을 내려가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엄마는 곧장 옷장 맨 위 서랍을 열어 손수건을 꺼내어 찬이의 얼굴을 닦아주고 젖은 손수건들을 치우고 새 것을 다시 놓았다.

체온계의 띡띡 소리와 함께 노란 불이 들어왔다.

"자야지."

작은 목소리로 엄마는 부드럽게 타이르고 찬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찬이는 어쩐지 으앙 울고싶은 기분이 되었다.


엄마는 울음이 삐죽삐죽 시동을 거는 찬이의 입술과 볼을 만져주고 계단을 반쯤 올라와 걸터앉았다.

엄마의 팔이 찬이의 머리 위를 감싸고 엄마의 얼굴이 찬이의 젖은 머리 위에 얹어졌다. 다른 손은 이불을 올려덮고 찬이의 어깨를 토닥토닥였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토닥토닥

두근두근


천장에 빛이 한번 크게 넘실거렸지만 찬이는 보지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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