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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ll Oct 21. 2023

토미의 세상

엄마, 바람은 왜 불어?

토미가 묻자 엄마는 잠시 눈썹을 찡긋하더니 말했다.

ㅡ 지금은 겨울이니까 북풍이 입김을 불고 있는 거야.

ㅡ 북풍?

ㅡ 북풍은 북쪽 끝에 사는데 겨울바람을 불어주는 바람신이야.

엄마는 다시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로 웃으며 답했다.


거짓말.

토미는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할 때는 나쁘지않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니 모른척 해주기로 했다.


엄마는 모르는 걸까?

토미는 지난 주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읽어 알고 있는데.


그래도 왠지 엄마에게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엄마는 으레 거짓말을 하지만 대부분 재미는 있으니까.


엄마가 북풍 흉내를 내며 호ㅡ 불자 입김이 하얀 구름처럼 뿜어나왔다.

겨울은 춥고, 입김은 예쁘다. 엄마는 더 예쁘다.

토미는 엄마 손을 잡고 호ㅡ 입김을 불며 걸었다.


바람은 공기가 차갑거나 따뜻해서 분다고 했다.

차가운 데서 따뜻한 데로 공기가 움직이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세상은 멋져.

토미는 생각했다.


세상은 멋진 것 투성이다.

공기는 움직이고 입김은 추우면 하얘지고

더 더 많은 구름이 모이면 비가 온다.

구름이 왜 생기고 비가 왜 오는지도 책에 전부 나와 있었다.

그 부분은 대충 읽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멋지다.


내 입김도 비가 될까?

토미는 엄마 손에서 손을 빼어 입김을 호ㅡ 불었다.

축축한 물기가 만져졌다.


정말 멋져.


토미는 마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올려다봤다.

엄마는 웃으며 토미를 내려다보고, 신호가 언제 바뀌는지 지켜보려고 다시 앞을 보았다.


사람들은 핸드폰을 보거나 엄마처럼 신호등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신호가 바뀌자

사람들이 걸어나갔다.


토미는 멍하니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공기도, 구름도, 비도,

사람들도,

모두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은 여러 이유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입김을 호ㅡ 불자 구름이 몽실몽실 흩어졌다.

토미는 엄마가 다시 돌아와 뭐라고뭐라고 나무라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이 저절로 깜박여졌다.


나도 움직이고 있어.

나도 세상에 있어.


ㅡ 미안해!

토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어안이 벙벙한 듯 화내던 것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한숨도 구름이 되어 세상 속으로 갔다.


나도 움직이고 있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도 세상이니까.


다시 잡은 엄마 손은 따뜻했고

바람이 한 차례 후욱 지나갔다.


추운 겨울에도 어딘가에는 따뜻한 곳이 있어서

바람이 불고 있는 거야.

토미는 길을 건너며 폴짝폴짝 뛰었다.

바람길을 따라 따뜻한 집으로 향했다.


ㅡ 갑자기 왜 신이 났어?

엄마가 정말로 궁금한 듯이 물었다.


토미는 대답 대신 엄마에게 와락 안겼다.


따뜻해.

세상은 따뜻해.


토미는 정말로

어디로든 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터질듯한 마음으로 엄마를 꽉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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