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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Feb 25. 2020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러게 어릴 때 잘하지. 30대 책을 처음 보기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마음 좀 가다듬고 새롭게 살겠다는데 초치는 사람이 주변에 꼭 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나이 먹은 후에 일하면서 책을 보거나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서 하는 말일 테니까. 무엇보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릴 적부터 '사람은 잘 안 변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아니 '사람을 변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 그 말이 정말인 줄 알았다. 종종 죽을 위기를 겪고 나서 완전히 변한 사람을 보면 '사람이 저리 변하네'라고 하곤 했지만,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문제 앞에서 변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뭣들 못하겠냐'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변화란 쉽게 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대체로 하루에 정해진 일과가 있고, 다 소화하는 것도 벅차다. 그래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잘 변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잘 안나는 것도 한몫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막연히 변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도 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물음표로 답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사느냐를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어릴 때 잘하지'라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어릴 때 많은 것을 쌓아둔다면 커서 응용 및 활용하며 살아가면 되니까. 그래서 '어릴 때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말이 어느 정도 납득은 간다.


하지만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들어가면 얼마나 슬플까? 우리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그 미래에 비참함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할 것이다. 무엇을 해도 바뀔 수 없다는 생각과 사고는 개개인을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최상위 위치에 올라왔다. 인류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손톱이나 이빨은 야생동물보다 못하고 달리기 속도도 느린 인류가 지금 위치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0년 전 인류와 지금의 인류는 신체적인 능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약한 손톱을 가졌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에너지가 나지 않는 비효율적인 신체를 갖고 있다.


진화라는 것은 가장 최적화로 리셋시키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유용한 방면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 프랑수아 제이콥의 유명한 말처럼 땜장이와 처지가 비슷하다. 우리는 어느 날 스위치를 꺼서 최적화가 되도록 몸을 개조하고 다시 깨어나는 그런 로봇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그렇기에 진화의 가능성이 이전에 진화한 것의 제약을 받는다.


우리의 기억이 불안정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기억이 완벽했더라면 깜박하는 현상이라든가, 오해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불안정하며 그래서 맥락적으로 기억한다. 


인간의 사려 깊은 추론에 적합하면서도 정말로 믿을 만한 기억을 갖추려면 진화의 과정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어야만 할 것이다. 만약 그런 체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강력하고 세련된 것이겠지만, 또한 그것은 간단히 말해 진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 <클루지>


컴퓨터는 저장한 것을 임의로 지우지 않는 한 영구 보관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지 않다. 필요한 것만 기억하고 불필요한 것을 필터 하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최적의 방법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닌 '인간에게 맞는 최적의 방법'으로 기억하는 것뿐이다.


이 말은 불행으로 들리지 몰라도 적어도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탄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화하고 성장을 추구하는 존재다. 지금껏 인류는 그렇게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더 진화할 것이다. 때문에 '사람은 잘 안 변해'와 같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가 없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꾸준히 변화해 오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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