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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Aug 15. 2019

나를 평가하던 목소리는 어떻게 달라졌나

20대의 나는 게임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정확히는 10대부터 했으니 꽤 오랜 기간 게임에 미쳐있었다.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웃자고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여름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놀았다는 것이다. 새벽에 PC방을 가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하루 종일 게임을 했으며 늦은 밤에 집에 가길 반복했으니 그런 표현이 틀리진 않았다.


어느 날부터 게임 대신 책을 손에 들었다.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많은 게임을 하고 나서의 나서의 허무함과 당시에 사정으로 인해 게임이 여러 가지 이유로 질려 있었다. 그때 생각이 든 것이 '미래를 위해 좀 더 나은 것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었고 찾아본 결과가 책이었을 뿐이다. 그날부터 퇴근하고 매일 카페를 가거나 주말 또는 휴일에는 책을 들고 카페에 갔다.


당시 책을 들고 다니면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 중 하나는 '이제 와서 책 본다고 뭐가 달라지냐'였다. 몇몇 친구들은 웃었고, 가족인 어머니조차 공부라는 게 다 때가 있는 것인데 이제 와서 늦지 않았냐 라는 말을 들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율로 보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는 게 압도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나를 응원하는데 반해 누군가는 나를 끌어내리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공부에는 때가 있다?


우리 인생에서 오롯이 공부애 매진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시절은 학창 시절이 아닐까 싶다. 각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은 공통된 경험이다. 그 시절에는 다른 거 생각할 필요 없이 오롯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기간이다. 공부를 많이 해서인지 몰라도 두뇌의 활동 방식도 학습하는데 최적화되어있다. 그때의 소중함을 처음 깨닫는 때가 성인이 되고 나서 영어단어를 외울 때이지 않나 싶다. 어릴 때는 외웠던 영단어가 지금까지도 기억나는데 반해 어제 외운 영단어가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력도 떨어지고 과거에 했던 공부 경험이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공부가 다 때가 있다는 말에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뒤늦게 책을 들고 있는 내가 그런 말을 들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아득히 먼 기억 저편에 묻어둔 채,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퇴근한 후에는 지친 몸을 회복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데 퇴근 후 남은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고, 주말이라는 한주의 피로를 푸는 시간에도 책을 본다니 누군가가 보면 왜 뒤늦게 고생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인 거 같다. 지금 사는 것도 힘든데 멀 그리 힘들게 사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던 거 같다. 그들에게 공부란 학창 시절에 하면 되는 거였지 지금은 먹고사는 것에도 힘이 벅차다고 말했다.



# 중국에서 천년 간 이어진 전통, '전족'


중국에서 10~20세기 초반까지 천 년 동안 유행했던 '전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위적으로 여자 아이의 발을 묶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전통 풍습이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하는 이 풍습은 발의 형태를 기형적으로 변형시켜 때로는 걷는 것조차 불편하게 만든다. 성인이 되어서도 발의 길이는 10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느낟. 전족을 시작할 때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천으로 싸매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면 전족을 한 후 1~2년 동안은 집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지금 보면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학대로 비치는 행위가 1000년 간 이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지만 중국 왕실의 상류층인 아름다운 궁녀(무희)들이 전족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전족이라는 노동을 할 수 없는 발이 된다는 것에는 상류층 + 미녀라는 의미를 내포했다. 즉 중국 사람들에게 미인의 기준이 작은 발이 된 것이다. 이 기준을 갖추기 위해 평생을 불편한 발로 살아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전족의 사례가 시대가 갈수록 그 이유는 알지 못하고 관행처럼 퍼졌던 것이다. 왜 작은 발이 미인의 기준이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여성들이 전족을 했다. 대다수의 사람이 전족을 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전족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고 추론했을 것이며, 이런 상황은 전족을 하지 않으면 사회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족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인다는데 동조하게 되고 10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전족의 경우에는 좀 더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압박이 가해졌다. 발이 큰 사람을 추녀로 취급하기도 하고, 전족을 하지 않은 사람을 천민으로 여겨 사람의 가치를 떨어트리기도 했으며 정기적으로 전족 대회를 열어 발이 가장 작고 아름다운 여자를 미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대회나 상은 상징적인 의미를 수반해 전통이 문화적으로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 전 국민적 차원에서 전족을 지지한다면 한 개인이 이런 전통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전통을 따라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되려는 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심리다. -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관습은 왜라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타인이 하기 때문에 나도 따라 하는 것이다. 왠지 그래야 할거 같고, 그로 인해 이득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이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태도는 무조건적인 맹신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이것이 좋지 않은 관습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없다. 암묵적인 약속이 셀 수 없는 많은 여성들을 비극으로 몰아간 것이다.


# 전족은 어떻게 무너졌나


중국 허베이성 바오딩에 있는 도시 딩저우에는 1889년까지만 해도 99퍼센트의 여성들이 전족을 했지만, 30년 후인 1920년에는 아무도 전족을 하지 않았다. 천 년간 지속되어온 전족이 30년 만에 없어진 것이다. 190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전역에 전족이 유행하고 있었으며, 실질적으로 없어지기 시작한 때가 1947년 이후인 것을 고려하면 신기한 현상이다. -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천 년 간 이어진 전통은 너무나 손 사리 사라졌다. 어떻게 이러한 것이 가능했을까? 전족에 반대하는 사회 운동가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진 몇몇 가구를 골라 전족을 하지 않도록 설득했고, 그 가족들은 공개적으로 전족을 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전족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점점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족을 그만두자 관습이 급속도로 힘을 잃기 시작하고 도시 전체에 전족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떻게 이리 쉽게 사라질 수 있었을까? 저자는 다음의 말을 남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전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면 그 답이 보인다. 새로운 구성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족을 행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행위에는 합리적인 의미와 이유가 있다고 믿어 이에 동조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구성원들은 "왜?"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전족을 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전족을 왜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전통에 서서히 균열이 생겨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전족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이긴 해도 그들에 의해 자행된 '공개적 반대 행위'가 쉽게 동조를 이끌어 낸 것이다. -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만약 그때 내가 책 보는 걸 멈추었다면 지금의 나는 결코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삶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내 삶에 훨씬 만족하고 있다. 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그들은 더 이상 내게 핀잔을 주지 않는다. 나를 보고 '이제 와서 책 본다고 뭐가 달라지냐'라는 말 대신 어떤 책이 좋냐고 추천해 달라고 하거나, 때론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나는 이제 '때가 늦은 사람'이 아니라 '재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그들에게 내가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가진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 덕분이었다.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어느 정도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지독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 신경안 쓰였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애써 무시했다. 내가 생각하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꾸준히 할 수 있었다.


1997년 만들어진 애플의 광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의 애플을 있게 한 'Think Different'. 남이 말하는, 세상이 주어진 관습대로 살 것인가 미친놈 취급받더라도 내 인생을 살 것인가. 선택은 나의 몫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i5k3lxy6eM




참고: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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