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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Aug 13. 2019

기록하는 이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몇 년이 지난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조회수가 엄청 나오거나, 인기가 있거나 하진 않지만 꾸준히 쓰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있다. 글을 쓸 때마다 무엇을 쓸까 항상 염두한다. 이전에 미리 생각해둔 게 있다면 좀 나은데 그런 게 없을 때는 주제를 잡는 것만으로도 한참 시간이 걸린다.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이 내게는 어렵고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주변에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일기'형태를 쓰시는 거냐고 묻는다. 혹은 맛집 소개나 여형 관련 글을 쓰는 줄 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딱히 고치려 노력하지 않는다. 서평도 어찌 보면 나의 삶과 책의 내용을 한데 녹아 쓴 것이기에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 이유이다. 그러나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그것보단 좀 더 의미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 내가 아는 것, 경험한 것을 기록하는 공간


책만 보던 시절이 있었다. 일주일에 4~5권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고 반납했었다. 책을 많이 보겠다는 일념 하에 그런 방법을 강행했었고 나름 성과도 있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1일 1 독하기 도전에 성공한 했고, 지금은 그때보단 덜하지만 책을 손에 놓지 않는다. 책을 읽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책을 통해 달라진다고 하는 인생이 내게는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 나는 책을 소비하듯 대하고 있었다. 마치 저렴한 마트에 가서 가성비가 좋아 보이는 물건을 살펴보고 구매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달까. 왠지 모를 기시감이 떠나지 않자 한 가지 더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바로 책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이었다. 그때의 노력은 지금은 습관이 되어 블로그를 꾸준히 쓰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글감이 떠오를 경우 엄청난 속도로 타자를 두드리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잘 없다. 책에 대해 쓸 때도 어떤 책은 쓸게 많지만 어떤 책은 다 읽고 나서도 '뭘 써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무엇에 대해 쓸지 막막할 때도 있지만 문장 구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한다. 처음 의도와 달리 쓰다 보니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더럭 있어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이내 고쳐쓰기로 마음먹고 다시 글을 점검한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글쓰기에 매진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글쓰기 덕분에 내 인생에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긴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놓지 못한다. '나는 왜 쓰는 걸까?'라고 돌이켜보면 가장 큰 이유는 기록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 기록하지 않은 감정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제 점심에 먹은 메뉴가 기억나는가?. 그렇다면 일주일 전에 먹은 점심은 기억나는가?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입력받는다. 수많은 정보가 입력되지만 다행히 뇌에서는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알아서 필터 해 준다. 일주일 전에 먹은 점심이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 하나하나 기억할 정도로 뇌가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예전에 여행지에서 먹었던 비빔밥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여행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다양한 것을 기억하면서 비빔밥이 같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 내내 무엇을 먹었는지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특별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여행후기를 쓰지 않았다. 다행히 사진은 남아있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지만 이젠 여기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을 거 같다. 당시에 느꼈던 온전한 감정이 사진에 고스란히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때의 감정, 그러니까 칠흑 같은 밤바다를 보면서 느낀 고독함, 우울함, 씁쓸함, 그리움 등이 온전히 사진 안에 있지 않았다. 그저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지, 어쩌면 그때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나?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조작된 감정이 될 수 있다. 당시에 느꼈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당시에 작성했어야 했다. 이미 한참 지난 후인 지금 기억의 어느 한편에 있는 것을 꺼내어 작성하는 오롯이 그때의 감성이 되지 못했다.


여행의 마지막날 저녁,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해보라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당일에는 나역시 마지막날이니 무언가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카페에 앉아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마땅히 생각이 나지않아 친구들에게 물어본 것이 시작이었다. 그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술집에 가서 꼬치와 맥주를 한잔 시켜 먹고 오라는 것. 여행의 마지막날을 그렇게 보내는 내가 조금 측은했던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을 먹고 골목사이에 있는 술집을 찾으러 나섰다. 몇개 괜찮아 보이는 곳을 봐두었다. 몇차례 알아봤지만 어디로갈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길거리를 방황했다. 그때 친구가 어디든 어서 들어가라고 말했다. 왠지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

여행의 마지막날이라는 것은 분명 특별한 마법이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서운하고 아쉽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니 남들은 무엇을 하나 살펴보게 되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 시도해볼 생각을 한다. 그냥 하면 좋았을지도 모를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브레이크가 걸렸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턱에서 몇번이고 얼쩡거리다 다시 발길을 돌렸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평소에도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혼술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행의 마지막날이라는 이벤트때문에, 이전에 안해본 것을 해봐야한다는 그런 이유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 '여행의 마지막날, 나의 색' 포스팅 중




기록하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과거를 회상하기에도, 지난날에 대한 반성을 하기에도, 감정을 다시 꺼내기도 좋다. 그러나 기록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수고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여행 가서 사진을 많이 찍는 이유는 그런 기록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겨보고자 하는 의지이자, 귀찮음을 덜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한데 엮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들이 이미지로 표현될 수 없는 것처럼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기록을 한다. 기록은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자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이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지만 언젠가 되돌아봤을 때 그때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이미지나 동영상 못지않게 글 역시 탁월하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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