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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Aug 11. 2019

말복날 어머니가 건넨 1만 원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부른다. 오늘 말복이라고 1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며 이걸로 보태 삼계탕이라도 사 먹으라고 한다. 말복이 일요일이라는 건 며칠 전에 들었지만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삼계탕 한 그릇 사 먹을 돈이 없을 정도로 궁핍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식을 챙겨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별말 없이 감사하다고 말하고 받았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도 왜 어머니의 돈을 받았을까? 그때 든 생각은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무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전부터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줄 때에 나는 기꺼이 그것들을 할 수 있다며 먼저 손사례 쳤다. 이전 같았다면 어머니가 주는 돈을 '괜찮아 내가 사 먹을 수 있어'라며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꺼이 받았다. 어머니가 내게 주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시라고 생각해서였다.


인간은 타인과 교류하며 감정을 주고받는다.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경우 이상하게 감정의 이상현상이 생긴다. 심해질 경우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고,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써먹질 못해 퇴행하고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감각을 잊지 않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물로 비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물이 고이면 악취가 나듯 감정도 고이면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올해 초 씽큐베이션 독서모임에 참가했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영감을 받았다. 가장 큰 영감은 '함께 하는 법'이었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게 더 효율이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효율적 측면만 보면 여전히 그럴지도 모르겠다. 단, 내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상태라면 말이다.


함께해서 좋은 점은 지치고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결코 '위로해줄게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가끔 톡방에 힘이 되는 이야기, 도움이 되는 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흔적 등을 올려 공유할 뿐이다. 그 모습에 다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위로받는다. 만약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람이, 혹은 받기만 하는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떨까? 아마 지금처럼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는 안되지 않았을까?


오늘 어머니와의 대화는 그런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서로 부족한 것을, 혹은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줄 수 있는 교감이 거기에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은 내가 어머니를 더 많이 챙기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물론 어머니 생각은 전혀 다를 수 있지만), 말복이라는 이벤트를 놓치고 갈 수 있는 허술함을 어머니가 채워주었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서로 유기적으로 채워주는 관계가 가장 건강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어머니는 1만 원을 건네주고 잠시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것도 내가 챙겨줘야 하니. 나도 자식이 주는 거 받아보고 싶다'


그래도 어버이날과 생일은 꼬박 챙겨드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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